- 시내길(가칭)에서 만난 시래기 김밥 달인 -

박경순 시인 사진작가협회 평택시지부장

[평택시민신문] 섶길은 늘 새로운 길을 발굴하기 위해 탐색하고 있다. 시청 앞 섶길 원점에서 출발하여 덕동산 자락을 경유, 통복시장과 원평동 일대를 거쳐 평택 시내를 두루 걸을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 가칭으로 시내길이라 부르고 있는 이 섶길 코스는 나지막하지만 매봉산과 덕동산 자락이 포함되어 있으며, 관내 학교들도 두루 경유할 수 있다. 더욱이 시내를 걷는 재미로 빼 놓을 없는 것은 먹을거리와 커피가 풍성하여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획기적인 점이 있다.

평택 중학교 앞에는 대중김밥이라는 간판이 붙은 작은 김밥집이 있다. 김밥 달인으로 방송을 탔다는 사실을 귀동냥으로 들은 지 꽤나 지났는데 갈 기회가 없었다. 지난 일요일 시내길 자료 사진을 찍기 위해 걸었다. 출발이 조금 늦어서 그런지 점심시간에 그 김밥집을 지나게 되었다. 약간 추운 날씨에 김밥을 먹는다는 게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소문과 달리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마치 행운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두 사람이 앉아 먹을 만한 의자가 한 옆에 있었다. 달인의 명성답게 프랑카드가 걸려 있고 한 쪽 벽에는 방송국에서 인정하는 달인 마크가 붙어 있었다. 두 여자 분이 김밥을 말고 있었다. 식탁에는 김밥 재료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고 김밥을 마는 손이 기계처럼 움직였다. 재료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일반 김밥과는 다른 것들이었다. 시래기, 명이나물, 다진 콩고기(나중에 들어 앎) 등 생소한 재료들이었다.

나는 얼른 섶길에 대한 언급을 하며 이 김밥집을 글로 쓰고 싶다고 했다. 어떤 경위로 방송을 타게 되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 맛집으로 등록되어 방송국에서 제의를 해 왔다고 했다. 어떻게 시래기를 김밥에 넣을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 주인(이경빈 씨, 57세)은 대뜸 “웰빙 바람이 불었잖아요” 라며 서두를 꺼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메뉴로 차별화가 중요하잖아요“ 한 마디 한 마디가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스쳤다. 그러면서 시래기처럼 줄줄이 엮여 나오는 지난날의 실패 경험들을 털어 놓으셨다.

감자탕, 칼국수, 만두, 김밥집 등 네 번의 실패로 빚을 떠안게 되었다고 한다. 아파트와 남편의 개인택시까지 팔고도 빚을 지게 되었다며, 바닥이라는 말이 말 그대로 바닥이었다며 그때의 심정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이 참담했다고 한다. 눈을 뜨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지만,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일어서야겠다는 죽을 각오로 지금의 김밥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시래기에 대한 예찬도 잊지 않았다. 하루에 몇 줄만 먹어도 건강해진다며 시래기 한 줌을 밥 위에 얹으시는데, 자세히 보니 보조기구를 하고 계셨다. 하루에 250에서 300줄을 말며 반복적인 동작을 하다 보니, 많이 쓰는 부위의 근육이 뭉친다며 돈 버는 일이 몸을 망가뜨린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손님들이 맛있다고 찾아와 주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며, 매스컴을 타고 난 후, 부산에서 엄마와 아들이 왔는데 너무 밀려 엄마에게 김밥을 못 드린 게 가장 맘이 아프다고 회고했다.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이 많이 남아 있지만 잘 커서 제 몫을 해내는 아들(호주에서 요리 공부)과 딸(헬쓰 트레이너)이 있어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대화 도중에 소설가가 되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학교 다닐 때는 제법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들었다며 머쓱해 했다. 간간이 전화가 울려 내가 대신 전화를 받아 주었다. ”우리 집은 손님들이 전화도 받아주고, 돈도 카드도 직접 긁는다“ 며 달관한 듯한 말투였다. 일 년 삼 백 육십 오일 중 명절날만 쉬고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김밥을 말며 벌써 6년째 한결같은 맛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것이 소망이라며 처음과 끝이 변함없는 대중을 위한 대중 김밥집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노동을 덜어 드리고 싶은 마음에 김밥 써는 기계가 있더라는 말씀을 전하며 꼭 구입하실 것을 권해 드리고 나왔다. 시내 구간을 걷는 동안 달인이 되기까지 자신을 수없이 담금질해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인생길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외부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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