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기지촌 미군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 항소심서 국가 책임 인정

소송나선 원고 117명 전원에 300만 원 ~ 700만 원 위자료 지급 판결

우순덕 햇살사회복지회 대표, “진상조사·생활지원 특별법·조례 제정” 촉구

8일 ‘한국 내 기지촌 미국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 항소심 판결 직후 진행된 기지촌여성인권연대 등의 기자회견에서 우순덕 공동대표가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의 여성을 경제와 안보를 위한 도구로 전락시켰던 미군 기지촌 위안부 사건에 대해 법원이 국가가 미군 기지촌을 운영·관리하면서 성매매를 정당화 및 조장했다고 처음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 8일 미군 위안부 여성 117명이 낸 ‘한국 내 기지촌 미국위안부 국가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 민사22부(부장판사 이범균)는 “정부는 원고 43명에게 각각 300만원, 74명에게 각각 700만원의 위자료와 그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미군 위안부 여성들은 국가가 ▲불법적인 기지촌 조성과 운영·관리 ▲불법행위 단속 면제와 불법행위 방치 ▲조직적·폭력적 성병 관리 ▲성매매 정당화·조장 등의 행위를 하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국가의 행위가 ‘국가의 보호의무 위반’ 또는 ‘성매매의 중간매매 및 방조’에 해당하여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각각 1000만 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지난해 1월 진행된 1심에서 법원은 국가가 조직적·폭력적으로 성병을 관리했다는 원고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1977년 8월 19일 이전 강제 격리수용을 통한 성병치료행위만 위법했다고 인정했지만, 국가의 책임은 크게 제한해 120명의 원고 중 54명에게만 각각 5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하지만 이번 2심에서는 국가가 기지촌을 운영 및 관리하고, 성매매를 정당화 및 조장했다는 미군 위안부 여성들의 주장까지 받아들여 국가의 책임을 확대 인정했다.

먼저 서울고법은 국가가 기지촌을 운영·관리했다는 원고 측 주장에 대해 보건부·경기도·춘천시 등의 공문에서 ‘외국군 상대 성매매에 있어서 협조 당부’, ‘주한미군을 고객으로 하는 접객업소의 서비스 개선’ 등이 나오는 점으로 비추어 국가가 기지촌 위안부의 성매매를 ‘조장’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담당 공무원들이 기지촌 위안부를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로 치켜세우거나 ‘다리를 꼬고 무릎을 세워 이렇게 앉아라’라는 성매매업소 포주가 지시할 만한 사항들을 직접 교육했던 점, 더불어 고위 공무원들이 나서 전용아파트 건립 등의 각종 혜택을 약속했던 점도 기지촌 내 성매매를 방치·묵인하거나 최소한의 개입을 넘어 국가가 기지촌 내 성매매 행위를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정당화’했다는 판결의 근거가 되었다.

1심에서는 1977년 8월 19일 이전의 강제 격리수용만 위법하다고 인정했지만, 2심에서는 행위시점과 무관하게 ‘토벌(단속)’이나 ‘컨택(성병에 걸린 외국군이 지목만 하면 소명 없이 수용소로 끌고 감)’ 등으로 의료진단 없이 강제 격리수용한 뒤 신체적 부작용 가능성이 큰 페니실린을 무차별적으로 투약한 행위는 인권존중 의무를 위배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이렇게 2심에서는 미군 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이 주장한 4가지 사안 중 3가지가 받아들여졌지만, ‘국가의 불법행위 단속 면제와 불법행위 방치’에 대한 주장은 1심과 마찬가지로 증거 부족으로 배척됐다.

한편, 서울고법의 항소심 선고 직후 서울법원 종합청사 앞에서는 기지촌여성인권연대 등의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우순덕 기지촌여성인권연대 공동대표(햇살사회복지회 대표)는 “기지촌 미군 위안부들은 ‘경제의 도구’였고, ‘안보의 도구’였다”면서 “정작 기지촌 미군 위안부들의 안보는 국가로부터 보장받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가는 이제라도 근본적인 책임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국회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진상조사와 생활지원 등을 내용으로 하는 특별법과 조례를 제정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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