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W트레킹 마지막날 자유롭고 한가하게 걷는다.

꼬닥꼬닥 걸으라게(천천히 걸어라)

평택섶길 걷고 싶은 길 많다.

트레킹중 하늘을 벗삼아 쉬고있는 대원들

예전에 제주 할망들은 서둘러 달려오다가 넘어지는 손주들에게 말하곤 했다.

“재기재기 와리지 말앙 꼬닥꼬닥 걸으라게(빨리빨리 서둘지 말고 천천히 걸어라)”

대한민국은 너무도 속도가 빠른 나라다 성적도, 승진도, 집을 넓혀가는 일도, 운동도, 걷기에서도 남보다 빠르기를 원한다, 빨리 가려다 보니 자빠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들려 주고 싶다, 저 옛날 제주 할망들의 지혜를.

“꼬닥꼬닥 걸으라게”

걷는 길만이 아니라 인생길에서도 마찬가지다.

 

길 내는 여자 서명숙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서문 중에서

 

파타고니아 원정대 2진은 대부분 50세가 넘는 여성분들인데 가다가 쉬고, 쉬면서 수다 떨고, 수다 떨다 간식 먹고, 너무나 한가롭고 여유롭네요. 수만 년 전의 빙하가 크고 작은 호수가 되어 함께 걷는 길 눈앞에 새하얀 만년설을 이고 있는 쿠에르노스 델 파이네 산봉우리들이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3시간 쯤 갔을까. 검게 그을린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몇 년 전에 이스라엘 청년들의 부주의로 산불이 났는데 여행객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하여 불 탄 그대로 놔두고 있다는 군요.

빙하호를 끼고 트레킹중인 파타고니아
원정대원들 멀리 눈덮인 안데스산맥이 보인다

몇 년간 비바람에 씻긴 불 탄 나무들의 모습이, 흡사 강시들이 서 있는 것 같아 섬뜩하네요, 인간들의 부주의가 몇만 년간 생성된 아름다운 자연을 한 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었으니 안타깝네요. 프란세스 계곡 흔들다리를 건너 이탈리아 야영장에서 잠시 쉬는데 경천동지 할 굉음이 울리면서, 하얀 포말이 올라오는 거예요.

만년설이 녹으면서 눈사태가 난 거예요. 소리도 소리지만 하얀 포말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마치 사진에서 본 핵우산 같아요.

오늘의 숙박지인 로스쿠에르노스 산장에 도착했더니 그렇게 좋던 날씨가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거예요. 산장식당에서 양고기 스튜와 빵으로 저녁을 먹고, 약간의 음주 후 날씨가 추워 얼굴만 닦고, 옷 입은 채로 침낭 속에서 꿀잠. 다음날 아침 텐트 속에서 꾸물거리다 나와 봤더니 이게 웬 일, 태양을 머금은 뒷산이 온통 붉게 타오르고, 어젯밤 비바람은 온데 간데 없고, 날씨가 너무 좋은 거예요. 우리 대원 중에 삼대에 걸쳐 적선을 하신 분의 은덕이라고 자칭하면서 W트레킹 셋째 날 마지막 코스, 출발지인 토레스 산장으로 걸어 가는데 유달리 나무에 핀 빨간 꽃이 많은 거예요. 제가 지나가는 트레커들에게 손짓 몸짓으로 꽃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더니, 세 번째 응답자께서 ‘Red fire heart'라고 하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불꽃같은 꽃모양이 그럴 듯 했는데 돌아와서 검색해 보았더니 ‘Red Fire Bush’더군요.

칠레 파타고니아에서만 볼수있는 꽃 Red Fire Bush

아마도 제게 알려주신 분이 젊은 남녀였는데, 자기들 마음을 표시한 것 같아요. 로스 쿠에르노스산장에서 목적지인 토레스산장까지는 11km인데 보통 다섯 시간이면 가는데, 저는 일곱시간이나 걸렸어요. 체력도 체력이지만, 이곳에 언제 또 올까 생각을 하니, 눈에 담고 가슴에 품을게 너무나 많은 거예요. 평택섶길 위원회 일원으로서 5,6년간 평택에 걷고 싶은 길을 만들다 보니 토레스 텔파이네 국립공원의 이정표, 안내도 조차 예사롭지가 않은 거예요. (사)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 씨가 한 말 중에 제가 항시 잊지 못하는 말이 있어요, “그때는 몰랐다. 길을 걷는다는 걷과 길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가를”

모두들 묻지요, 산도 없고, 여러 가지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과연 평택에 걷고 싶은 길이 있겠냐?

토레스 산장 야영장 예약 없이 구할수가 없다

저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껏 발견하지 못한 숨어 있는 아름다운 길, 역사가 있는 길, 민초들의 아픔이 있는 길 등 현재도 꽤 알려진 코스가 있어, 전국의 걷기 매니아들이 평택시민들이 알게 모르게 걷고 있고, 개발 중에 있는 코스도 있다고 설명을 합니다.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길을 내는 사람의 일차적인 지침이지요.

파타고니아 원정대 대장 조정목

토레스 산장에 도착해, 그동안 밀렸던 빨래를 하고, 갖고 간 라면과 여러 가지 반찬으로 야외에서 파티를 하는데 살이 빠져서 가야 하는데, “살이 쪄서 갈 것 같다”고 하는 여성대원의 말이 실감이 나네요. 위장이 완전 음식 분쇄기예요. 소주는 왜 그렇게 달디 달은지. 더욱 놀라운 것은 한시간정도 지났을까 빨래가 다 마른거예요. 태양과 바람과 청량한 공기의 합작품, 파타고니아의 선물입니다.

W트레킹 코스중 산불의 흔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조정묵 파타고니아 원정대 단장

 

글: 조정묵 파타고니아 원정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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