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꼬박 하루하고 2시간 30분만에 칠레 수도 산티아고 공항 도착

칠은 ‘끝’ 레는 ‘세상’, 칠레는 ‘세상의 끝’이라는 뜻 실감

독립기념비와 정복자 기마상이 한 광장에 공존하는 나라

내일이면 칠레에서도 끝자락인 푼타에라나 공항으로 출발

산티아고 대성당

칠레의 뜻은 남미 원주민 마푸차 종족의 언어에서 온 말입니다. 칠은 ‘끝’이라는 말이고 레는 ‘세상’이라는 뜻으로, 칠레하면 ‘세상의 끝‘이라는 뜻입니다.

일본 나리따 공항에서 미국의 달라스공항까지 약 12시간, 공항에서 5시간 대기,미국 달라스 공항에서 칠레 산티아고 공항까지 약 9시간30분, 세상의 끝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또한 헝클어졌던 시간개념도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지구 반대편 칠레의 시간은 우리나라보다 정확하게 12시간이 늦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입국수속을 밟는데 또 문제가 생긴겁니다. 인천공항에서 부친 짐을 환승으로 인해, 산티아고 공항에서 찾았는데, 공항 내 마약견이 저희 일행들 짐보따리 앞에서 어슬렁거리는 겁니다. 대수롭지않게 여겼는데 웬걸, 몇몇분이 세관 검색대에서 가방을 열고 소지품을 검색당하는데, 집에서 만든 육포, 짱아치,멸치볶음 등이 나오는 거예요. 공장에서 만든 상품화된 물건이 아닌 것은 농축수산법에 의거 신고를 해야되는 데 신고를 안해 불법이라네요, 적발된 물건을 다 두고 가겠다고 해도 세관에 가서 압수는 물론 진술서 쓰고 나오는데 두시간이나 걸렸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벌금이 300불인데, 초범이라 훈방조치 했다는 군요. 우여곡절 끝에 30분거리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보니, 애지중지 가져온 김치상자가 없는거예요, 분산해서 타고 온 승합차에 그냥 두고 내린거지요, 김치보따리 찾는데 한시간, 도합 3시간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다 까먹은 거예요, 산타아고 시내 역사탐방이 예정되어 있거든요.

아르마스광장의 정복자 발디비아의 기마상

남미는 제국주의 손길이 뻗치기 전까지 이곳 원주민들은 오랜 세월 다양한 문명을 이루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492년 스페인여왕의 원조를 받아 이탈리아 탐험가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면서 고난의 역사가 시작되었지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남미지역을 중심으로 신대륙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합니다. 두 나라가 남미지역을 포함한 전세계 식민지를 둘러싸고, 분쟁을 거듭하자, 1493년 교황 알렉산더 6세가 중재에 나서 토르테시야스(Tordesillas)조약을 체결합니다. 아프리카 서쪽 카보베테르 섬으로부터 약 1500km 떨어진 지점에 일직선을 긋고 기준선 서쪽은 스페인이 차지하고, 기준선 동쪽은 포르투갈이 차지하는 걸로 결론을 내렸는데, 현재 브라질은 포르투갈이 그 외 지역은 스페인이 차지하는 모양새가 되었답니다. 이런영향으로 지금도 남미 국가중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그 외 지역은 스페인어를 쓰고 있습니다. 오랜 식민통치를 받던 남미에서도 19세기 들어 독립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남미독립에 가장 큰 역할을 했던 계층이 ‘크리오요(Crioll)'였는데 ’크리오요‘는 신대륙에서 태어난 유럽백인을 뜻합니다.

대통령 집무실 모네다궁

이들은 식민지 지배계층으로 유럽에 유학을 많이 다녀왔고, 19세기 유럽에 번진 자유주의, 계몽주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그 결과 자신들이 현재 살고 있는 식민지 주민들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시몬 볼리바르(1783~1830)입니다.

볼리바르는 남미의 해방자라 불리는데, 1819년 누에바그라나다(현재 콜롬비아) 1821년 카라카스(현재 베네스엘라)와 키토(현재 에콰도르)을 해방시켰습니다. 또한, 그가 해방시킨 알토지역은 그의 이름을 따 나라이름을 볼리비아라고 지었습니다. 또 다른 남미독립의 영웅은 호세 테 산 마르틴(1778~1850)인데, 그 역시 스페인계 ‘크리오요’출신입니다. 마르틴은 산티아고(현재 칠레)를 독립시켰는데. 칠레는 마르틴을 지금도 독립의 영웅으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장콕도의 시에 뱀이라는 짧은 시가 있습니다.‘너무 길다’ 칠레가 그렇습니다. 남북의 길이가 4200km인데 동서폭은 180km도 안되는 길어도 너무 긴 나라입니다.

대성당 내부

대한민국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나라, 그에 따라 칠레산 와인, 칠레산 홍어가 낯설지 않은 나라 그 나라의 수도 산티아고 중앙시장(해산물시장)에서 역사문화 탐방을 시작하였습니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면 박물관에 가고, 민초등의 삶을 보려면 재래시장에 가보라 했듯이 산티아고 중앙시장은 서울의 노량진 수산시장이나 부산의 자갈치 시장처럼 별반 다를게 없었습니다. 공항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군침은 돌지만 시간은 없고 볼 것,먹을 것도 많지만, 다음 목적지로 향해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었습니다. 국제시장에서 20분정도 걸어가면 아르마스 광장이 있습니다. 1540년 스페인의 하수인 프란치스코 피사로의 수하에 있던 페드로 데 발디비아의 원정대가 페루에서 침입하여

1541년 산티아고시를 건립한 이후, 3세기에 걸친 식민지배가 이어졌는데, 칠레 정치 역사의 중심역할을 해 온 곳입니다. 광장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독립기념비가 있고, 정복자인 발디비아 기마상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상반되는 이질적인 역사가 공존하는곳, 그 곳이 칠레, 더 나아가 남미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였고, 뼈속깊이 느꼈습니다. 아르마스 광장앞에는 대성당이 있는데 네오클래식 양식으로 정복자 발디비아가 산티아고를 건설하면서 짓기 시작해 1558년 완성된 건축물입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지어진 건축물인 만큼,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지르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부로 들어가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기하학적인 돌기둥들 현란한 실내 인테리어, 성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스테인그라스, 초기 선교사들의 성구, 유명화가들의 종교화 등 내부의 모든 것들이 하나로 조화되어, 성스러움과 엄숙함이 느껴졌습니다. 기도하는 분들의 틈새에 끼어 저도 모르게, 종교적인 힘에 이끌리어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여행의 시작입니다. 여행이 끝날때까지 무사하게 안전하게 낙오자 없게 해주세요~’

대성당을 나와 모네다 궁전 및 헌법광장을 보기 위하여 보행자 전용거리를 걸어 가는데,아르마스 광장에서 보았던 판토마임하는분, 버스킹 공연하는 분, 수공예품을 파는 원주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서울의 인사동 같은 느낌을 받았는데, 산티아고 중심거리는 남미의 파리라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길 양쪽에 늘어선 건물들조차 파리를 연상시키는 유럽풍의 건물들로서 고풍스럽고, 역사의 손때가 느껴지더군요,나중에 알고보니 이곳 거리 이름이 ‘누에바 요크’거리인데 영어로는 ‘뉴욕’으로 번역되고 뉴욕의 금융가 맨해턴처럼 증권거래소 은행 등 금융업을 주로하는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입니다.

누에바 요크거리를 지나 길을 건너가니 모네나 궁전 및 헌법광장이 나타납니다. 1805년 네오클래식 스타일로 지어진 모네다궁은 모네다는 원래 ‘돈’이라는 뜻으로 조페국으로 착공하였다가 현재 대통령궁으로 사용되는 곳입니다. 현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곳인데, 1973년 군부 쿠테타 당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끝까지 이곳에서 저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17년동안 철권을 휘둘렀던 피노체트 정권시절, 피의 정치 학살장소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시간이 웬수입니다. 모네다 궁을 외부만 보고, 헌법광장을 지나 부지런히 다음 행선지인 산티아고의 남산, 산타루치아 언덕을 향해 갑니다.

산티아고는 안데스산맥에 둘러싸인 분지로서, 대기순환이 잘 이루어지지않아 대기오염이 심한 곳입니다, 거기에다 오늘 산티아고의 기온은 영상 30도를 웃돌고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 극기훈련이 따로 없습니다. 산타루시아 언덕은 정상에 올라가니 산티아고 도시가 한 눈에 들어오고, 주변에 요새로 썼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고도 630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전망대까지는 계단도 많고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날씨는 덮지 꽤 힘들었습니다. 전망대 중턱에서 거리의 악사를 만났는데. 땀도 식힐 겸 10불을 주고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를 신청했습니다. 기타와 펜플릇(원래이름 싼뽀니아)으로 연주를 하는데 남미음악은, 무엇인지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 애잔한 울림을 줍니다. 경쾌하면서도 서글픔을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주는 음악이지요, 흥얼 흥얼 연주에 맞추어 따라 부르는데 집에서 사이먼 가펑클의 노래로 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이어서 이탈리아 나폴리 민요 ‘산타루치아‘를 연주하는데 경쾌하고 발랄해야 할 노래가 우리나라 ‘아리랑’노래처럼 한이 느껴지는 겁니다. 식민지시대를 거쳐온 두 민족간 감정이 서로가 겹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파타고니아 원정대 단장 조정묵

산타루치아 언덕에서 내려와 모두들 기진맥진, 저녁먹을 곳을 찾아 시내로 들어가는데 마침 초밥집이 있어 들어갔더니 한국분이 운영하는 식당이였습니다. 목이말라 맥주부터 시켜 쭈욱 들이키는데 그 맛이 일품이라 사장님한테 물어봤더니 이곳분들은 와인도 즐기지만 맥주를 더 즐기고 와인도 맛있지만 맥주도 품질이 우수하다는 군요, 마음씨 좋은 사장님 덕분에 생선초밥을 든든히 먹고, 호텔로 일찍 돌아왔습니다.(저녁 아홉시인데도 하늘이 훤함)

내일은 세상의 끝. 칠레서 칠레의 끝 푼타에라나행 비행기를 새벽에 타기위하여 새벽4시에 기상해야 합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듯이 내일의 걱정은 내일하고, 오늘은 푹 자야겠습니다. 힘든 하루였습니다.

 

글: 파타고니아 원정대 조정묵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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