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길에서의 생각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다는 것’

박경순 시인/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지부 지부장

[평택시민신문] 11월은 스산하다. 무언가를 잃어버린것도 같고 겨울 채비를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주위가 어수선하다. 그래서일까? 인디언들은 11월을 영혼을 돌보는 달이라 부른다고 한다.

11월 중반 쯤에 명상길을 걷게 되었다. 평택시 청소년 쉼터에서 실시하는 특별교육(학교 징계 청소년 대상)에 참가한 학생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나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 그 까닭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시절을 지나오면서 겪은 경험이나 두 아들을 키우면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사람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뿌리를 내리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용비어천가의 문헌에도 나와 있듯이, 흙에 잘 묻혀야 가지와 잎이 무성해서 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지나고 나야 그때가 보이고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게 인생 여정인가 보다. 나는 청소년 시기를 혼돈 상태라 생각한다. 가슴 속에 원대한 세계를 품고 있으나 안개가 자욱하여 그 형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지금에 와서야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꿈과 현실의 간극이 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쉼터 학생들과의 만남이 나를 설레게 했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어른으로 보일까, 나는 과연 어른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안고 학생들과 만났다.

준비해 간 깃발에 글씨 쓰기를 부탁하자 동글동글한 글씨를 가지런히 쓰는 중학생 친구와 고등학생 친구 세 명이었다. 간단히 자신의 소개를 하고 원신왕리 마을 회관 앞에서 시작되는 명상길을 걸었다.

걷는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면 보행에 속도를 맞춰야 했다. 그러나 선두와 후미의 차이는 계속 벌어지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선두에게 속도를 늦춰 줄 것을 요청하여 겨우 한 장 담았다.

시간이 갈수록 선두와 후미의 간격은 더 벌어졌다. 굳이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목적지에서 만나면 더 반가우리라 미루어 짐작했다.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다. 중간 지점인 섶길 쉼터가 있는 곳에 왔을 때 선두를 지켜오던 대열이 길을 잘못 간 것을 알았다.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정해진 길로 되돌아와야 했다. 당연히 후미 대열이 먼저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중학생은 “꼴찌가 일등이 되었다”며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길을 잘 못 간 고등학생들은 자신들을 버렸다며 귀여운 투정을 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고 있는 것이 인생길이라는 생각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 했지만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학생, 수줍게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 무엇보다 만둣국과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는 모습에서 건강한 뿌리를 본 것 같았다.

성장기의 아픔들은 쓰디쓰나 지나고 보면 명약이라는 생각이 든다. 멀고 험한 인생 여정을 단련하고 연마하는 과정이 청소년기가 아닐는지.

혹시나 내가 선입견을 갖고 그들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동행한 학생들을 다시 한 번 가슴에 그려 본다. 조금 늦더라도 자신만의 속도로 잘 걸어 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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