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이 시인 세 번째 시집 <나는 다량의 위험한 물질이다> 출간

1993년<현대시학>으로 등단하여 왕성한 문단활동을 하고 있는 평택출신의 유정이 시인이 시집 <내가 사랑한 도둑>, <선인장 꽃기린>에 이어 세 번째 시집 <나는 다량의 위험한 물질이다>를 출간했다. 유정이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기본적인 내용(바탕)은 같으나 부분적으로는 조금씩 차이가 있는 이본(異本)의 세계를 끌어올려 우리 세계의 본질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밖의 절망이나 비극, 고통과 참혹 등의 실체를 외면하지 않고 들여다보며 그러한 것들이 우리 삶의 진실일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삶의 이면(裏面)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시력은 섬세한 현미경과 같아서 세계의 본질을 따라잡는 확장된 사유를 문제적으로 풀어주고 있다. 즉 원형적 세계관을 드러내며 더 확장된 세계와 사유들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밤새워 읽은 책은// 이본(異本)이었어요//밑줄 그어 두었던 문장은 모래화석이 되었죠//눈으로 읽은 글자는 귀로 모여//버스터미널처럼 시끄러운 소리를 내거나//바퀴를 굴리며 떠나갔어요//질문 없는 나라에 도착한//선박이 밤새 읽은 것은 두꺼운 안개였습니다//새벽에 깨어나면 우리는 어두운 색깔//내가 읽은 페이지는 찢어진//아니죠 찢긴//너무 더러운 바닥이었어요

-<온유한 독서>전문

 

시인은 이렇게 이본(異本)이 되어버린 하나의 세계를 파헤치고 있다. 삶은 언제나 환하게 빛나는 일들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때로는 희비쌍곡선을 연출하며 참혹함의 극치까지 맛보게 하는 것임을 은유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때로 너무 어둡기도 하고, 참혹하기도 하고, 찢어지기도 하며 급기야는 더러운 바닥 같은 폐허에 도달하기도 하는 것임을 일러주고 있다. 삶의 이면(裏面)과 이본(異本)을 이해하고 살아간다면 그야말로 삶의‘온유한 독서’를 즐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유정이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나는 다량의 위험한 물질이다>에는 형이상학적 사고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고독은 골목과 같아서’에서는 당신은 골목이고 골목은 고독과 같은 동류항이라서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는 어둡고 무거운 절망의 골방에 스스로 갇히고 만다. 거기서 시인은 ‘다량의 위험한 물질’이 된 자신을 발견하곤 하염없이 울어보지만 뿌연 눈동자로 멀거니 서 있기만 하는 가등(街燈)을 어쩌지 못하는데...... 삶의 이면에서 끌어올리는 시인의 희망 메시지를 따라가 보면 절망의 늪을 빠져나오는 용기와 희망의 피가 흐르고 있다. 시인은 ‘아직’ 이라는 단어 하나에서 다양한 희망의 맥을 짚어내고 있다. 절망의 끝에서 건져낸 ‘기회’라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시의 힘이다.

 

아직, 이라는 그 말에 용기가 났다//용기는 운동장의 말//소각장 담벼락에 이미,를 세워두고//주먹 날리는 말//아직,이라는 당신의 말은//경기 다 끝나고도 전광판//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말//초록에도 피가 돈다는//수혈의 말//아직,이라는 말은//정면의 말//몇 번의 질문이 더 남았다는 말//이미,의 형량을 감형한다는 말//다시는 거기로 가지 않아야 한다는 말//3할 4푼 5리//스트라이크 아웃 다음의 말//지금 달려도 된다는 말//눈을 감고 뛰라는 말//눈을 뜨면 거기//당신이 서 있으리라는 말

-<아직>전문

 

유정이 시인

유정이 시인은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3년 《현대시학으로》으로 등단. 시집『내가 사랑한 도둑』 『선인장 꽃기린』 『나는 다량의 위험한 물질이다』 동화집『이젠 비밀이 아니야』 시 해설집『현대시 함께 읽기』를 출간했고, 2002년 푸른 문학상을 수상했다.

경희대학교 겸임교수로 있는 유시인은 평택에서 한도시 한책읽기 운동인 ‘한 책 하나 되는 평택’의 도서선정위원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추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유시인이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본지 <평택시민신문>에 50여 회에 걸쳐 매주 연재한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라는 에세이는 독자들의 큰 호응을 받은 바 있다.

 

배두순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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