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동안 ‘평택의 옷’ 책임지는 장인

양복점 30년, 수선집 20년 운영

빠르고 정확함과 부지런함이 강점

평택역 앞 상권, 평택로 64번길 KFC골목 뒷편에 자리 잡은 ‘우리집 수선’의 미싱기는 오늘도 바쁘게 돌아간다. 주변 옷가게에서 맡기는 옷가지들뿐 아니라 20년 경력을 통해 확보한 단골들의 옷까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문영숙(76) 씨를 찾는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쉼 없이 수선할 옷들을 매만지며 문 씨는 “지금은 그나마 한가한 편”이라며 “AK백화점이 들어오기 전까지 평택명동거리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고, 옷을 구입하고 수선을 맡기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고 전했다. 그 결과 휴일도 없이 오전 6시에 출근해 오후 10시까지 일을 하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장사는 예전만 못하지만 문 씨는 불만이 없다.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매일 옷 수선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침마다 출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수선한 옷을 보고 사람들이 만족해하면 보람을 느낀다”

고덕 출신의 청년 문영숙 씨가 처음 양복 디자인을 배울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수선가게를 운영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양복 디자인을 배웠다. 그는 “서울에서 많은 사람들의 양복을 제작했다. 당시 유명 연예인 옷도 많이 제작했던 기억도 있고, 그 인연으로 TV에 나오는 사람들과 종종 어울렸던 적도 있다”고 과거 이야기를 덤덤히 전했다. 고향인 평택으로 내려와 가게를 연 것도 수선집이 아닌 양복점이었다. 평택명동거리에서 5명의 직원을 둔 양복점 사장이자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많은 평택 사람들의 양복을 제작했다. 문 씨는 “당시 누군가 결혼을 하면 신랑은 물론 직계가족까지 양복을 해 가는 등 장사가 잘됐다. 옷을 잘 제작하기로 소문이 나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고객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IMF로 인한 국내 경기 침체가 문 씨의 발목을 잡았다. 도통 고객들은 지갑을 열지 않았다. 점점 사람들의 발길은 뜸해지고, 양복을 맞춰 입는 문화도 사라져갔다. 그 결과 문 씨는 55세가 되던 해 30여년 동안 운영한 애정 깃든 양복점을 닫았다.

이후로 농사를 준비했지만, 오랫동안 잡고 있던 미싱기의 경쾌한 소리와 옷감의 부드러운 감촉은 잊히지 않았다. 지인이 수선집을 차려보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를 선뜻 받아들인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우리집 수선’이 분주히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문 씨는 “첫날 매출은 고작 4000원”이라며 고전했던 초반 영업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복점 문 사장이 수선집을 차렸다‘는 소문이 평택역 상권전역으로 돌기 시작했고, 점점 ’우리집 수선‘을 찾는 고객이 많아졌다. “빠르고 정확하게 수선하니까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는 전한다.

지역 상권의 침체로 과거에 비해 수선을 맡기는 사람은 적어졌지만, 지금도 AK백화점, 동탄 등에서도 수선을 부탁할 정도로 수선 장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문영숙 씨. “앞으로도 힘이 닿을 때까지 사람들의 옷을 수선하며, 만족해하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미싱기 앞에 섰다.

문영숙 씨(왼쪽)와 부인 정금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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