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규 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
인문학·박물관·문화재단·도서관 축제·지역사 등 모든 분야에서 역사성과 정체성 담아내야
시사편찬위원회 상설화 필요하고 행정의 문화재단 간섭 배제 원칙 지켜져야
평택시가 인구 100만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100만이라는 인구는 규모만큼이나 질적으로 다른 개념을 갖고 있다. 인구 40만 시대를 가져온 2000년대 이전의 평택의 인구는 간척에 따라 유입된 농업인구, 평택역과 서정리역 설치 이후 유입된 상업인구, 그리고 6.25전쟁 뒤 유입된 기지촌주변의 인구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빈농층이나 도시빈민층, 상인계층이 다수였고 학력수준이 낮고 문화적 욕구가 크지 않은 계층이 많았다. 하지만 인구 100만 시대에 새롭게 유입될 인구는 이전과 질적으로 다른 계층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들은 사회경제적으로는 고학력, 중산층이 다수일 것이며 수준 높은 교양과 문화 예술적 욕구를 갖고 있을 것이다. 평택시는 인구증가를 감안하여 신도시를 개발하고 도로 등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하고 하며, 또 개발 중인 고덕국제신도시 중앙공원에 문화예술의전당과 중앙도서관, 중앙박물관 건립을 계획하고, 두강물사업이나 공원조성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문화·예술적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 많다. 그러면 평택시의 문화정책에서 무엇이 아쉽고 어떤 요소를 채워야 할까, 좁은 소견으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지역의 인문학발전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평택지역은 인문학적으로 매우 척박한 지역이다. 지역대학에 인문학 관련학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고, 지역학을 연구하는 학술단체나 시민단체가 많지 않으며, 관변단체의 연구인프라도 미약하다. 평택대에 ‘평택학연구소’가 설치되었지만 실상은 지역관련 이권을 따내기 위해 급조했다는 의혹이 있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려면 평택시와 지역대학의 상호협력으로 인문학이나 지역학 관련 학과를 설치할 필요가 있으며, 또 지역학술단체에 대한 지원과 협력적 연구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 ‘평택문화재단 설치’가 필요하다. 지역문화재단은 오래전부터 문화예술지원사업을 관장하고, 문화예술발전의 로드맵을 구축하며,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 연구, 문화정책개발, 문화시설의 체계적, 전문적, 지속적 발전을 위해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고려해야할 사항도 있다. 먼저, 기존의 문화원 사업과 중복되지 말아야 할 것과, 관(官)이 예산과 공공시설을 모두 장악하고 운영할 경우 문화예술이 어용화, 획일화 될 가능성이 있으며, 때로는 지방자치단체장의 홍보용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문화재단을 설치하려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며, 퇴직 공무원이나 단체장과 관련된 인사보다는 전문가에게 재단운영을 맡겨야 한다.
셋째, 도서관, 박물관 건립 문제다. 현재 평택시에는 12개의 공공도서관이 운영 중이며 가까운 시일에 배다리도서관이 개관하고, 고덕국제신도시 중앙공원에 중앙도서관도 건축할 예정이다. 도서관의 확충은 도시의 지식기반을 마련하고,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며, 시민들의 지식과 교양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미국의 경우처럼 지역기업들이 도서관을 건축하여 기부하는 관행이 한 건도 없다는 점이다. 박물관 건립도 평택시장의 관심 속에서 순항 중이다. 현재는 타당성조사를 끝내고 관련 유물조사가 진행 중이다. 박물관은 지역의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전시하며 수장하는 역할 외에도 조사연구 기능과 교육기능을 갖고 있는 종합적 문화시설이다. 현재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박물관은 ‘평택박물관’이라는 종합박물관이다. 종합박물관은 평택의 역사와 지리, 문화, 지배층과 민중들의 삶을 모두 담아내어 지역사의 정체성을 제시해야 한다. 종합박물관이 만들어진 뒤에는 선사박물관, 해운박물관, 간척박물관, 군사박물관, 민속 및 무속박물관, 생활사박물관 등 다양한 전문박물관이 건립될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 건립이 지역적 요구에 맞고 내실 있게 추진되려면 담당 학예사를 우선 선발하여 건립과정을 주관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예산을 편성하여 유물을 수집하고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평가를 미리 해두는 것도 필요하다. 정치가들과 시민들의 박물관에 대한 올바른 이해도 요구된다. 그래야만 우리에게 필요한 박물관이 건립될 수 있다.
넷째, 내실 있는 지역축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평택시에는 평택호물빛축제 등 몇몇 지역축제가 있지만 문화에 대한 이해와 철학이 부족하다보니 시민들의 높은 평가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지역축제는 고유성을 담은 콘텐츠와 지역과 관련은 없지만 전문성을 담은 콘텐츠가 모두 필요하다. 고유성을 담은 콘텐츠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축적과 이해에서 출발한다. 평택시에는 진위면 마산1리 오룡동줄다리기 등 지역문화에 기반을 둔 축제들이 있지만 마을공동체가 함께 즐기는 축제에 외부인들이 지나치게 간여하면서 주민들의 반발과 마을축제의 고유성이 훼손되었다. 그러므로 마을축제는 지원하되 외부인의 참여를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문성을 담은 콘텐츠로는 인천 송도에서 열리는 ‘펜타포스 락 페스티벌’이나 ‘부천국제만화축제’,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등을 꼽고 싶다. 이 같은 콘텐츠는 전문가를 초빙하여 기획하고 진행하게 하며 간섭하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이밖에 우리지역에 명망 있고 실력 있는 문화 예술인들을 초빙하여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활동을 지원한 뒤 전시회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안이다. 그래야만 문화가 풍부해지고 살찐다.
인구 100만 시대 대비한 수준높은 문화‧예술정책 로드맵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지역사와 지역문화 관련 조사·연구·편찬사업을 평택시가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평택시는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는 중이다. 그만큼 빠르게 전통의 경관과 수 백 년 전통의 마을들이 해체되고 있다. 평택시는 개발의 로드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전통마을의 보존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부득이하게 개발하려면 마을의 경관과 주민들의 삶, 주민들의 기억을 조사·연구하고 전승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200년 역사의 미국대통령과 미군들이 방문했을 때 평택시가 뿌리 깊은 전통과 미래의 희망이 공존하는 도시임을 자랑할 수 있다. 또 평택시사편찬위원회의 상설화도 반드시 필요하다. 과거 20년 동안 평택시가 제작한 두 번의 ‘평택시사’는 부끄러운 유산이다. ‘시사(市史)’는 지역의 정사(正史)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자치단체장의 척박한 역사의식과 잘못된 정책으로 졸속으로 추진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 같은 사례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화성시처럼 시사편찬위원회를 상설화하고 지역연구성과와 사료를 수집 정리한 뒤 편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화와 예술은 악세사리가 아니다. 얼마 전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 국가주석은 자금성과 천안문을 휴관하고 트럼프를 머물게 했다. 혹자들은 이것을 미국대통령을 황제처럼 대우했다고 평가하지만 필자는 중국이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전통으로 역사가 짧은 미국을 기죽였다고 생각한다. 평택지역에도 이 같은 역사적 전통과 유구한 문화유산이 있다. 다만 우리의 눈이 흐리고 생각이 짧아 보지 못할 뿐이다. 우리지역의 문화유산이 한낮 악세사리가 아니라 도시의 품격을 높이고 시민들의 자긍심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힘과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