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창립 90주년 기념 특별기획취재 ④

1919년 동경의 2.8 독립선언으로 조국독립 선포…국내 3.1운동의 시발점

근우회 동경지회 설립지 '도쿄대학교 기독청년회관' 국내 언론 최초로 확인

신간회 동경지회, 1927년 5월 7일 와세다대학교 스코트홀에서 창립

 

>>편집자주_ 평택시민신문은 2017년 창립 90주년을 맞아 그 정신을 기억·전승하고자 신간회기념사업회와 함께 일본 동경과 교토에 남아있는 신간회 관련 사적지 두 곳을 취재했다. 이번 신간회 특별기획취재 4회에는 신간회 동경지회 창립지와 자매단체였던 근우회 창립지터, 2.8 독립선언 기념비 등 동경지역의 재일한인운동 사적지 탐방 기사를 싣는다. 꼼꼼하게 동경지역 취재 일정을 짜주고 통역을 담당한 현지 가이드 최상미 선생님과 현장 설명에 동행해주신 동경한국 YMCA 주재형 관장님, 와세다 봉사원의 카타오카 선생님께 지면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한다.

1927년 5월 7일 신간회 동경지회 설립대회를 개최한 와세다대 스코트홀 전경

기미만세운동 100주년과 평택 3.1 만세운동의 소중한 역사 기억 필요

2019년이면 3.1 만세운동 100주년이 된다. 평택에서도 당시 현덕면 3.9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4.1 평택역 만세운동 등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천도교 신자였던 포승 출신의 이병헌 선생은 서울에서 3.1운동 기획과정에 참여했고, 당시 20대 후반의 민세 안재홍 선생은 그해 5월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조직 김마리아, 이병철, 연병호 선생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1월에 발각돼 대구 감옥에서 1차 옥고를 치른다. 이 밖에도 평택지역의 많은 지도자들이 목숨을 바쳐 만세운동에 뛰어들었다.

 

2.8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동경 한국YMCA 회관’

2.8 독립선언기념비

3.1운동의 시발점이 된 것이 바로 일본 동경에서 있었던 2.8 독립선언이었다. 2․8독립선언은 항일 학생독립운동의 최고봉으로 당시 재일 한인유학생들이 임시로 결성한 ‘조선청년독립단’명의로 최팔용, 송계백, 김도연, 김상덕 선생 등 11명의 대표위원이 서명하고, 재일 한인유학생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919년 2월 8일 동경 한복판에서 조국독립을 전 세계에 선포한 사건이었다. 2․8독립선언은 한 달 후 국내 3․1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1920년대 청년·학생의 항일투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또한 국내외에 수많은 독립운동단체가 조직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항일 독립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재일 유학생들은 “일제가 한반도에 대한 식민통치를 계속한다면 일제에 대해 우리 민족은 영원히 투쟁할 것이며 결국은 ‘동양평화의 화원(禍源)’이 될 것이라고 일본에 경고”했다. 현재 2.8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자리 인근 ‘동경 한국YMCA 회관’에는 기념비와 기념관이 서 있다. 동경 한국YMCA 주재형 관장의 안내로 기념비의 의미와 기념관 내부를 돌아보았다. 2.8 독립선언 등 한국독립운동에 관심이 많은 일본인 실무자의 열정으로 다양한 자료들이 수집 전시돼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9년 2.8 선언 100년을 맞이하면서 자료 정리와 기념관 시설 보수 등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각계에서도 향후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우회 동경지회’ 설립지 ‘도쿄대 기독청년회관’ 최초 확인

근우회 동경지회 창립지 도쿄대 기독청년회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신간회의 자매단체 근우회 동경지회 설립 장소다. 동경대학교 정문 맞은편 ‘도쿄대 기독청년회관’으로 현재는 동경대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다. 창립 당시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이번 답사를 통해 국내에 창립지가 처음 확인 소개된다. 근우회 도쿄지회의 창립대회는 이 곳 도쿄대 기독청년회관에서 1928년 1월 21일 열렸다. 이 자리에는 60여명의 회원과 100 여명의 방청객이 참가하였으며 목포 출신으로 농촌 계몽 소설가로 활동했던 박화성의 개회사로 시작되었다.

선출된 주요 역원은 위원장 박화성, 서무부 이완구, 선전조직부 양봉순, 정치문화부 강평국, 재무부 김분옥, 출판부 윤성상, 조사정보부 지경숙 등이었다. 이 근우회 도쿄지회는 신간회 도쿄지회가 쓰는 사무실인 도쓰카쵸 199번지에 함께 쓰고 있었다. 따라서 절대 다수의 활동을 신간회 도쿄지회와 함께 했다고 한다.

 

민세 안재홍이 항일의 뜻을 준비한 일본 사립 명문 ‘와세다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신간회 동경지회 설립 장소인 와세다대 스코트홀이다. 이곳은 와세대 대학 부근에 위치해있다. 일본 사립 명문가운데 하나인 와세다대학은 평택출신의 독립운동가 민세 안재홍이 나온 학교이기도 하다. 민세는 1911년 월남 이상재의 권유로 동경유학을 결심 아오아마 어학원을 거쳐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에서 수학했고 해방 후에는 와세다대 한국교우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이곳은 민세를 비롯해 신익희, 이광수, 최남선, 장덕수 등 훗날 국내 각계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졸업한 학교이다. 또한 경제계의 삼성의 이병철·이건희 회장, 삼양사의 김상홍 회장, 효성의 조석래 회장 등도 와세다대 출신이다.

 

와세다대학 스코트홀 내부

‘신간회 동경지회’ 설립지였던 ‘와세다대 스코트홀’

1927년 5월 7일 오전 10시 이곳 ‘스코트홀’에서 신간회 동경지회가 창립됐다. 훗날 한국노총을 설립한 전진한의 사회로 국내외 각지 우의단체들이 보내온 축전과 축사를 들었으며 오후에는 각종 의안을 통과시키고 회장에 훗날 저명한 한의학자로도 활동했으며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부친인 조헌영을 지회장으로 선출했다.

신간회 동경지회는 11월 경 회원이 약 250명이었으며, 1929년 말에는 350명으로 늘어났다. 도쿄지회의 활동은 대부분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조선인단체협의회 등 다른 단체와 공동으로 전개했다. 주요 활동으로는 반동단체 민중회 박멸운동,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동포 추모회, 조선총독폭압정치반대운동, 중국시찰단 조선대표 파견운동, 국치일 기념운동 등이 있다. 한편, 스코트홀은 신간회 동경지회 활동뿐 아니라 동경 지역 재일 한인유학생들의 여러 활동에도 다양하게 이용됐던 터전이었다고 한다.

방문 당시 와세다봉사원의 아베 이사가 친절하게 마중을 나왔고,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카타오카 씨가 여러 자료를 제공하면서 스코트홀의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90년 만에 선배들이 독립의지를 불태우기 위해 모였던 공간에 다시 섰다. 그 당시 개회시간 전부터 회원들과 방청객들이 운집하여 입추의 여지가 없이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일제의 정신대 만행을 반성하는 ‘여성 전쟁과 평화사료관’

‘스코트홀’ 바로 옆 건물 2층에 일본인들이 중심이 돼 만든 정신대 여성들의 피해를 알리는 ‘여성 전쟁과 평화자료관’이 있다고 해서 야마시다 씨의 안내를 받아 활동 내용을 소개 받았다. 이들은 일본의 전쟁책임을 인정하고 얼마나 많은 아시아 각국 여성들이 성노예로 피해를 입었는지 적극 홍보하는 양심 있는 일본인들이었다. 한·일간 이런 노력들이 이어져야 진정한 사과 속에 화해와 치유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동경 답사를 통해 처음으로 근우회 창립지를 확인했다. 또한 일본 내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향후 ‘스코트홀‘에는 신간회 관련 기념표지석이나 기념판 등의 설치도 기관 단체 협력을 통해 추진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향후에 평택 지역의 시민·청소년들이 대학탐방을 겸해서 동경지역의 아오아먀 어학원, 우에노공원 등 민세 안재홍 선생 활동 사적지, 근우회·신간회 동경지회 활동지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90년 전 해외에서 신간회의 절대독립 의지를 몸소 실천했던 선열들의 정신을 현장에서 기억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에너지와 안목을 배우고 돌아와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여성전쟁과 평화사료관' 내부

 

참고문헌

- 이균영(1995) 〈신간회연구〉역사비평사

- 신용하(2017) 〈신간회의 민족운동〉 지식산업사

- 김인덕(1996) 〈식민지시대 재일조선일운동연구〉 국학자료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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