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길에서 만난 늦깎이 농부-

박경순 시인/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지부 지부장

[평택시민신문] 길에 관한 영화나 시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안소니퀸 주연의 '길' 과 교과서에서 읽었던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이다.

인생은 끝을 알 수 없는 길이다. 각자가 가고 있는 인생길은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 있다.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길도 있고 선택의 여지 없이 주어진 길을 가기도 한다.

프로스트의 시에는 선택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동경을 담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가 가고 있는 수많은 길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있다.

섶길을 걷다보면 그 길과 인접해 있는 마을과 들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젊어서부터 농사일을 해 오고 있는 어르신이나 아직 젊은 농부들과의 조우는 땅에 대한 근기를 느끼게 한다.

대추리 길 쉼터에는 늦깎이 농부가 있다. 도서관장을 지내고 정년 퇴임 후 제 2의 삶을 농부로 살아가고 계시는 분이다. 그 쉼터를 몇 번 지나면서도 뵙지 못 해 아쉽고 늘 어떤 분인지 궁금했었다. 궁금증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쉼터의 쥔장을 만나게 되어 그동안의 스쳐간 우연에 인연이라는 연줄을 걸게 되었다.

도서관의 책에 둘러 싸여 근무하셨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한 농부의 모습을 하고 계셨다. 평생 농부로 잔뼈가 굵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구릿빛 얼굴에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넉넉해 보였다.

농삿일이 서툴러 책을 보기도하고 이웃의 조언을 받아가며 이것저것 심어보고 그동안 심어 놓은 과실수에서 제법 수확이 있다며 경쾌한 목소리가 인접해 있는 밭으로 울려퍼졌다.그러면서 올 해 수확한 배가 당도가 아주 높고 과즙이 많다며 몇 개 가져 오셨다. 과도로 껍질을 벗기는데 사각거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과육이 연했다. 한 입 베어물자 과즙이 입 안 가득 고이며 달고 시원했다. 가족들이 다 먹기에는 수확량이 많아 지인들에게 팔기도 했다며 농부로서의 자긍심이 느껴졌다. 장화를 신으신 채 밭으로 우리일행을 안내하며 파릇한 밭두둑에서 무를 쑥쑥 뽑아올리시더니,가을 무 생채가 맛있다며 건네 주셨다.

그날 저녁 무 시래기와 무생채로 건강한 밥상을 마주 했다. 글밭을 가꾸는 작가들이나 밭을 일구는 농부들의 닮은 면에 대해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책 속에서 젊은 날을 잘 읽어내고 말년에 밭을 경작하는 그 분의 모습이 한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어쩌면 두 갈래길에서 가지 않은 삶의 길을 가며 새롭게 자신의 생을 가꾸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가지 않은 길은 과연 어떤 길일까 생각하며 가을 밤을 밝혔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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