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솜과 할머니 생각

박경순 시인 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시지부장

[평택시민신문] 나의 청소년 시절에 한창 유행하던 팝송이 있었다.

'카튼 필드'라는 팝송인데, 우리말로 번안되어 포크송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 경쾌한 리듬에 맞춰 고고춤도 열정적으로 추었던 모습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 시절 미국에서 목화를 많이 심어 농촌의 생계 수단이 되었던 배경을 노래에 담았던 거 같다.

뒤돌아보면 40여 년 남짓한 세월인데, 바로 어제 일처럼 느껴지는 건 우리의 놀라운 적응력의 힘일까

장서방네 노을길을 걷던 중 화분에 심어진 목화를 보았다. 목화밭이 아니어서 아쉽지만,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그 식물을 발견했을 때 '유레카' 라도 외치고 싶었다. 사실 목화솜이 먼저 눈에 띈 건 아니고, 빨갛게 물든 이파리가 햇살에 반짝이고 있어 그 시선에 이끌린 것이다. 마치 유물이라도 발견한 듯 신기해서 한참 동안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목화솜과 함께 떠오른 얼굴은 바로 할머니 였다.

할머니는 밭일하러 가실 때면 꼭 나를 앞세우셨다. 호미 들고 궁시렁거리며 따라 가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을 때면 하루 빨리 서울로 가고 싶었다. 흙에 살고 있는 지렁이나 벌레들이 너무 무서워 흙이라는 자체가 나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내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시집 갈 나이가 되었을 무렵, 할머니는 해마다 목화를 심고 가꾸어서 내 혼수 이불을 해 주셨다.

지금도 장롱에 잘 모셔두고 있는 두어 채의 솜이불.

부피가 너무 커서 솜을 타서 작게 만들고 싶은데 엄두가 나질 않고 목화솜에 대한 실용성을 받아들이는데 할머니 세대만큼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할머니의 손길과 마음이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거 같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그 시절의 철없음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시골 동네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뵈면 친근감이 들고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싶어진다. 흙에서 자라는 모든 먹을거리를 먹고 살면서도 흙과 친해지지 못 하는 자신이 못 마땅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우리네 할머니들의 삶이 다시 그려지는 것은 목화밭이나 목화꽃, 목화 솜이불을 아는 세대와 모르는 세대의 엄연한 경계에 있는 오늘의 모습에서 격세지감을 느낄 따름이다.

문익점 선생이 붓 뚜껑에다 몰래 넣어 와 우리 땅에 퍼뜨렸다는 극진한 인간애도 그 시효가 끝나가고 있나보다. 목화 꽃이 보고 싶어 화분에 심었다는 지인의 말을 들으며 이제는 식물도감에서나 찾아봐야하는 희귀식물이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세대가 저무는 것은 그 시대의 생활문화도 함께 사라져 가는 거라는 쓸쓸함이 장롱을 지키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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