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창립 90주년 기념 특별기획취재 ③

9월 27일, 목포 청년회관에서 두 번째 신간회 표지석 건립

목포청년회관은 “목포청년들의 지덕함양과 민족운동의 중심지”

신간회기념사업회(회장 강지원)은 2017년 창립 90주년을 맞아 그 정신을 기억·전승하고자 조선일보, 방일영문화재단과 함께 전국에 남아있는 4개 관련 사적지에 표지석을 건립하는 작업을 추진해왔다. 9월 27일(수)에는 신간회 목포지회 활동의 중심지였던 목포 ‘청년회관’에 두 번째 표지석을 건립했다.

1927년 6월 18일 ‘목포청년회관’에서 신간회목포지회 설립행사를 마치고 촬영한 단체사진

1934년 여름 목포 유달산에 올라 조선학운동을 다짐한 민세 안재홍

우리나라 서쪽 최남단 세발낙지의 고향 목포는 유달산과 삼학도가 상징이다. 1934년 7월 중순 평택출신 민족운동가 민세 안재홍은 훗날 조선학운동을 함께 전개했던 위당 정인보, 평택 청담고의 설립자였던 청담스님의 스승 석전 박한영 스님 등과 함께 충북 보은 속리산을 시작으로 옥천을 거쳐 충남 논산 관촉사, 전북 고창 황윤석 고택, 장성 백양사와 순창에 있는 산경표의 저자 신경준 고택 등을 거쳐 8월 중순까지 구례 하동과 한산도· 여수를 돌아 진도 울둘목을 거쳐 이곳 목포 유달산에 이르는 대장정을 마친다. 특히 남해 한산도에서 목포에 이르는 뱃길은 일제에 빼앗긴 민족정신을 찾기 위한 충무공의 혼을 깊게 탐색하는 시간이었다. 그해 9월 민세와 위당은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조선학운동〉을 실천한다.

 

한국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을 배출한 목포

목포는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 많다. 현해탄에 몸을 던진 ‘사의 찬미’의 가수 윤심덕의 애인이자 근대희곡의 선구자인 김우진의 고향이 목포다. 1930년대 농촌계몽문학을 이끌고 1928년 일본 동경유학중 신간회 자매단체인 근우회 간부로 활동했던 여류 소설가 박화성 선생의 고향이 목포다. ‘만선 ’의 작가 천승세 선생은 박화성 선생의 아들이다. ‘타는 목마름으로’를 노래한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인물 김지하 시인의 고향도 목포다. 목포를 정치기반으로 민주화운동과 한국정치발전에 기여한 김대중 대통령은 이 도시가 자랑하는 상징인물이다. ‘목포의 눈물’을 노래한 국민여가수 이난영의 고향도 목포다.

2018년이면 유달산과 남쪽 해안을 잇는 케이블카 사업의 본격 추진과 함께 목포시는 최근 구도심 활성화에도 크게 공을 들이고 있다. 근대도시 목포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여러 근대 건축에 대한 정비, 소설가 김우진의 삶과 스토리를 구도심 거리에 입히고 한옥을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해 목포역과 유달산 자락 구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지혜를 모으고 있다. 목포청년회관도 목포역에서 걸어서 10분 내외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지금은 근대건축이자 남교소극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목포 구도심에 조성된 김우진 문학거리

목포 민족운동의 중심, 목포청년회관

목포청년회관은 1920년대 목포청년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목포청년회에서 건립한 것으로 1924년 4월부터 회관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통해 남교동 땅 100평을 대지로 사들였고, 이듬해 1925년 3월 낙성한 것이다. 이 시기 목포청년회관은 “일개인의 집이 아닌 목포청년들의 지덕함양과 민족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1927년 6월 18일 신간회 목포지회 창립식이 바로 이곳에서 개최되었다. 또한 일제강점기 항일여성운동 단체인 근우회(槿友會, 1927년 5월에 조직) 목포지회의 창립식도 1927년 12월 3일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목포청년회관에서는 각종 집회와 강연회, 사회문제 대책회의 등이 열렸고, 인근 섬 지역의 소작쟁의를 지원하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등 일제강점기 목포민족운동의 보금자리였다.

목포청년회관

 

신간회 서울지회보다 한 달여 앞서 신간회 목포지회 창립

강연회 및 시민대회 통해 민족의식과 항일의식 고취

소작쟁의 등 사회문제 조사하며 지역 문제 해결위해 노력

 

신간회 목포지회의 설립과 주요 활동

신간회 목포지회 설립을 주도한 인물은 송내호, 장병준, 최경하 등이었다. 송내호는 완도 소안도 출신 독립운동가로 대한독립단에 입단하여 활동하였으며, 신간회 창립 당시 본부의 상무간사를 맡았다. 장병준은 장산 출신 독립운동가로 장산도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한 이 지역의 대표적인 항일운동가이다. 장병준과 송내호는 의형제 같은 사이였다. 이들은 1927년 5월 7일 목포에서 만나 죽동에 있던 최경하의 ‘삼산의원’에서 창립준비를 위한 회의를 갖고, 그곳에 임시 사무소를 설치하였다.

이후 약 한 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1927년 6월 18일 목포청년회관에서 창립행사가 거행되었다. 신간회 목포지회의 창립을 널리 알리기 위해 당일 오후 2시부터 악대(樂隊)를 선두로 깃발을 들고 단체 행렬을 한 후 4시부터 청년회관 내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하였다. 100여명 회원과 방청인들로 성황을 이루었다. 신간회 서울지회가 같은 해 7월 10일에 설치(지회장 한용운)된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빠른 시기에 목포지회가 설립된 것이다. 그만큼 목포가 서남권 네트워크의 중심도시로서 위상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신간회 목포지회의 민족의식 각성 활동

신간회는 회원과 일반 청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강연회, 시민대회, 정기대회, 원유회(園遊會) 등을 통해 민족의식과 항일의식 고취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간회는 창립 직후인 1927년 7월 19일 목포극장에서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신간회의 취지를 알리기 위한 이날 강연회에는 1000여 명의 구름관중이 모여들었다.

신간회는 단순히 목포의 문제뿐만 아니라 동포가 처한 사회문제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27년 12월 15일 신간회 목포지회에서 발기하여 사회단체연합회의를 개최하고, ‘재만동포옹호동맹발기회’를 조직하였다. 이 활동은 신간회 활동이 지회 조직을 통해 지역 활동가들과 연대하여 움직일 수 있었던 사례를 보여준다.

지역문제와 관련해서는 1928년 3월 30일에는 하의도 농민운동을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했다.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발발하자 목포에서도 이에 동참하는 학생운동과 기습 시위들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신간회 목포지회 청년동맹은 이러한 학생항일운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였다.

목포청년회관에 90년만에 표지석 세워

9월 27일(수) 오후3시 목포청년회관에서 90년전 목포신간회 설립에 힘쓴 독립운동가들의 뜻을 기억하는 표지석 건립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강지원 신간회기념사업회 회장, 서경덕 신간회기념사업회 부회장, 김태익 조선일보 논설위원, 박홍률 목포시장, 이병구 광주지방보훈청장, 김갑제 광복회 광주전남지부장, 최성환 국립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교수 등 각계인사 60여명이 참여해 그 뜻을 기렸다.

강지원 회장은 “엄혹한 일제강점기 목포의 민족 정기를 지키기 위해 신간회 목포지회 활동에 참여하셨던 목포지역 독립운동가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박홍률 목포시장은 “90년 만에 이곳의 역사성을 기억하는 표지석이 건립되어 뜻 깊게 생각하며, 앞으로 목포 신간회정신이 기억되고 확산되도록 역사교육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최성환 교수는 기념강좌에서 “신간회 목포지회는 지역에서 발생한 소작쟁의나 사회문제에 대한 조사, 다른 사회운동 단체와 연대를 시도하며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이 공간 등 목포시내에 산재한 근대건축의 역사성을 시민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알려 목포 구도심 활성화에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목포청년회관에서 신간회 표지석 건립 후 참가자들이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기념 표지석 건립을 통해 신간회 정신의 전국적 홍보 필요

창립 90주년만에 대구에 이어 목포에 신간회지회 활동 기념 표지석을 건립했다. 10월 서산, 11월 하동에도 표지석이 건립될 예정이다. 내년에는 경남 밀양과 통영, 전남 장흥과 나주 등 4곳에도 표지석을 건립할 예정이다. 신간회 활동을 실천한 일제강점기 건물이 현재 8개 확인되고 있고, 신간회 활동 건물터는 전국에 100여 군데가 넘는다. 신간회 지회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필요하다. 우리고장 평택출신 민세 안재홍이 신간회 창립을 주도했고 현재 기념사업회도 평택에 있는 만큼 신간회운동의 과거를 기억하며 각 지역과 연계해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는데 평택의 관심이 더 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향후 신간회운동에 대한 다양한 재조명 사업은 평택을 알리는데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이균영 〈신간회연구〉역사비평사

최성환 〈목포의 민족운동과 신간회 목포지회〉 2017 신간회목포청년회관 표지석 건립기념 강연, 신간회기념사업회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글 싣는 순서

➀일제강점하 최대 항일민족운동단체 신간회창립의 주역 민세 안재홍

➁신간회 운동 국내 사적지를 찾아서1_대구시 교남 YMCA회관

➂신간회 운동 국내 사적지를 찾아서2_목포 청년회관

➃일본 도쿄지역 신간회운동과 항일 운동 사적지를 찾아서

➄일본 교토지역 신간회 운동과 항일 운동 사적지를 찾아서

➅신간회 운동의 민족과 사회통합 정신, 이렇게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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