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한 책 하나되는 평택' 연중 릴레이기고 8 _ 이정수 한책도서선정위원, 독서논술지도

‘나’·‘우리’ 되돌아보기

아버지 생각에 몸살 앓듯 마음아파

허례와 가식없는 父性의 참모습들 구경하기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할 정도로 긴 시간이라 하지만 아직 사월이 되면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신 아버지 생각에 가슴을 앓곤 합니다. 헤어짐에 아무런 준비도 없던 제게 회한이란 단어 하나만 남긴 채 먼 길을 급히 가셨습니다. 그날 아버지를 모셨던 길에 보았던 눈처럼 날리던 꽃잎은 눈물로 흐린 시야에 들어와 뿌연 아지랑이로 남아있습니다.

올해의 한책으로 선정된 ‘조선의 아버지들’ 붉은 표지를 보며 ‘올해는 저 빛깔처럼 강하게 몸살을 앓게구나’ 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올해 봄은 심하게 오래 몸살을 앓으면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하나하나 곱씹을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서 진정 아버지를 떠나보내면 내년엔 벚꽃의 계절이 되어도 안 아플까요...

긴 논의 끝에 선정된 ‘조선의 아버지들’은 권위의 상징인 아버지의 다른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아버지, 한 여자의 남편으로 진솔한 내용이 많아 읽는 동안 자꾸 떠오르는 내 아버지의 모습에 눈물을 쏟기도 하고 또 때론 함박웃음을 터트리곤 했습니다. ‘잔소리 대신 편지로 아들을 일깨우다’란 소제목을 단 이황 선생님의 아이 훈육하는 모습을 보면서 고집 센 제게 한 번도 큰소리로 꾸짖지 않으시고 “아빠는 우리 수야를 믿는다.”며 엄마 몰래 용돈을 슬그머니 넣어주시던 아버지가 떠올라 꺽꺽 소리 내 울다보니 반찬 투정하시는 김정희 선생님이 또 아버지 모습과 오버랩 됩니다. 주위 사람들과 자식에겐 더없이 자상하신 큰 나무였지만 엄마의 기억 속에 있는 아이 같은 아버지 모습은 두 분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아 들을 때마다 입가의 미소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일부분만 보고 그 사람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하곤 합니다. 역사의 한 인물로만 여겼던 열두 분을 만나면서 어쩜 우리가 길들여진 틀을 가지고 그동안 ‘조선의 아버지’를 만들고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열두 분이 갖고 계셨던 개인적 고뇌와 가족을 향한 사랑과 허례와 가식을 벗어던진 참모습을 만날 수 있어 책을 읽는 시간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가부장적인 조선의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있을 거란 생각과 달리 따뜻한 아버지들을 만나면서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으면서 오늘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모습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아이들이 쏟아낼 이야기가 정말 궁금합니다.

가끔 사람들과의 관계가 힘들어질 때 하늘을 봅니다. 그곳에 제 아버지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아버지, 저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버지의 대답은 늘 한결같습니다. “네가 아닌 그 사람의 위치와 상황에서 다시 생각해 보겠니?” 역지사지면 사람과의 관계가 훨씬 원만해 질 수 있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신 아버지가 유난히 그리운 요즘입니다. 책을 다시 읽고 원고를 마친 지금 거울을 보니 눈이 퉁퉁 부어있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자식으로서 아무 것도 해드린 것이 없어 그게 늘 마음이 아픕니다. 그 마음이 홀로 계신 어머니께로 향해야 하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날마다 후회만 쌓입니다. ‘조선의 아버지들’이 억지로 봉인한 내 아버지의 기억을 꺼내게 합니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 기억 속에 풍덩 빠져있으렵니다.

 

이정수 한책도서선정위원, 독서논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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