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공동육아는 부모·지역사회·국가가 협력해 만들어 가는 공동체성 복원 운동

시간 많은 부모들이나 시도할 수 있는 소수의 육아방식이라는 편견 깨는 계기

 

신혜연 평택시 주무관

지난 19일, 제9회 평택시 거버넌스 포럼에서󰡒마을에서 함께 아이 키우기󰡓란 주제로 이경란(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무총장)선생님의 참신한 강연이 있었다. 필자도 여섯살, 세살 두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으로서 항상 육아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사는 처지이기에, 위의 주제로 포럼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필자는 3년 전 우연하게 󰡒공동육아󰡓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때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처음 다닐 무렵이라 관심 있게 찾아 본 적이 있다. 우리 시에도 공동육아 방식의 어린이집인 “느티나무 어린이집”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여건상 보내기가 어려워 포기하였던 경험이 있던 터라 공동육아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특히나 필자는 공동육아 방식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시간상 여유가 절대 조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공동육아 방식을 동경하면서도 필자 같은 맞벌이 워킹맘에게는 󰡒그림의 떡󰡓이라는 생각에 종국에는 질투 섞인 반감(?)까지 갖던 터였다.

이경란 선생님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드신 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공동육아에 관심을 갖다가 그 공동육아로 영유아기를 보낸 아이들이 자라 학교에 가니 자연스럽게 방과 후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도토리 방과후 공동육아 협동조합),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성인이 된 이후의 공동체적인 삶의 환경에 대해 생각 하다 보니 󰡒마을 만들기(사람과 마을, 마을배움@네트워크 판)󰡓로까지 관심사가 확장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강연을 들으며 크게 두 번 놀랐는데, 그 처음이 바로 이경란 선생님의 프로필 소개였다. 공동육아는 영유아기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는데 학교에 들어가서도 계속 할 수 있다니, 게다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공동육아 방식의 공동체적 삶을 지향할 수 있도록 한다니, 편협한 내 사고가 부끄러워졌다. 프로필 소개가 끝나니, 필자가 알고 있는 공동육아의 개념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까지 들기 시작했다.

공동육아는 󰡒아이는 집에서 엄마가 보는 것이 제일 좋다󰡓는 편견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엄마들이 고립된 채로 육아를 함으로써 발생되는 문제점들을 직시하고, 함께 아이를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특히 오늘날처럼 핵가족화 되고 다양한 가족 형태(한 부모, 조손, 다문화 가정)로 분화된 사회에서는 그 필요성이 더 크다고 한다.

이경란 선생님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공성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육아라고 보았다. 이에 세 가지 양육주체를 제시하였는데, 그 첫 번째가 자(自)로 양육의 기본이 되는 주체(가정)이며, 두 번째는 공(共)으로 부모, 교사, 어린이집,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호혜적 관계망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은 공(公)으로 국가책임보육을 실시하고 있는 정부(지자체)를 들었다.

공동육아에서는 특히 공(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였는데, 공동육아 협동조합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공동육아 협동조합에서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집은 전국에 80여개 정도 있으며, 그 조합원으로 부모가 참여해 식단 재료 단가까지 공유할 정도로 어린이집 운영을 함께 한다고 한다. 필자는 여기서 두 번째로 크게 놀라는데 바로 CCTV 없는 어린이집이 더 믿을만한 곳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공동육아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은 CCTV가 없다고 한다. 그만큼 아이들이 믿음이 있는 환경 속에서 안전하게 양육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몇 해 전 필자의 첫째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도 연초에는 CCTV가 없었다. 그즈음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에 필자를 비롯한 많은 학부모들의 우려와 걱정으로 인해 그 해 연말에는 CCTV가 설치되었다. 필자도 그 소식을 듣고 안도를 느꼈었다. 그런데 CCTV가 없는 어린이집이 더 좋은 어린이집이라니?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왜 이 당연한 사실을 그간 깨닫지 못했던 것일까?

이경란 선생님은 강연 말미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웃집 아저씨를 모른 척 해야 하는 사회가 안타깝다고. 그러면서 아이들이 마을 어른들을 통해 보고 배울 수 있는 “마을 생태계” 만들기를 제안하셨다. 주간노인돌봄센터에서 봉사하는 어른들을 보고 자라는 아이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만드는 오케스트라 등 마을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자연스레 공동육아가 되는 것이다. 즉 단순히 “내 아이”를 맡기거나 “남의 아이”를 보호해 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공동체의 역할』이 보다 중요함을 강조하는 대목이었다. 아울러 필자는 그동안의 공동육아에 대한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필자는 공동육아가 시간 제약 없는 부모들이 육아에 더 관여하여 아이를 돌보는 시스템이라 일반적 양육방식보다 더 고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오산이었다.

허겁지겁 저녁밥을 먹고 혹여나 친구들이 없을까봐 걱정하며 어둑해진 마을 공터로 달음질하던 필자의 모습과 해가 뉘엿뉘엿하던 초저녁인데도 놀이터로 나가겠다는 어린 아들이 걱정되어 기어코 따라 나서는 필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며, “공동육아”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날을 기대해본다.

※외부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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