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책 하나되는 평택' 연중 릴레이 기고 3 _ 유정이 경희대 겸임교수/시인

며칠 병실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다행히 수술까지는 가지 않고 염증치료로 추이를 지켜보는 입원이어서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2인용 병실이었지만 5일 동안 다른 환자가 들지 않아 독실이나 마찬가지로 호사를 누렸다. 그런 정도의 입원은 링거 줄을 여러 개 달고 거동 불편할 만큼의, 바늘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의 다소 과다할 지도 모를 항생제나 진통제 등의 기타 처치를 받아야 하는 불합리함도 있지만 마치 여행처럼, 때로 일상과 의무에서 잠시나마 놓여나는 묘한 휴식의 시간이 되기도 하는 강점이 있다. 하여 의사의 조언대로 스트레스 제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업무도 가사도 다 잊고 며칠 휴양하는 모드로 돌입하였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 진통제의 효력이 나타났고 일단 통증이 사라지고 나자 나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유 모를 불안이었다. 그 불안의 정체가 무엇일까를 한참 궁금해 했다.

‘아이가 휴가 온다고 했던가? 잊은 약속이 있었나? 기한을 넘긴 원고가 있었나? 제사를 놓쳤나?…’

그러다가 아하, 하고 무릎을 치듯 떠오르는 생각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려가지 않던 불안의 덩어리가 변비처럼 쑥 하고 떨어지던 것, 그것은 바로 읽을거리가 지근거리에 없다는 것이었다. 서효인의 시집『여수』와 모리스 블랑쇼『문학의 공간』두 권을 옆에 갖다 놓고 편안해 했다. 책은 불안을 잠재우는 부적과 같은 것인 지도 모른다. 지난겨울 작은 아들과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6일 도보여행이니 짐을 최소화하자해서 둘이서 각자 가방 한 개씩을 챙겼지만 결국에는 모두 착한(?) 아드님 짐이 되는 당연지사의 결과, 나중에 내 가방에서 나온 책을 보고 쏟아진 아들의 지청구가 어찌나 아프던지.

“엄마는 읽지도 않으면서 무겁게 책은 왜 이렇게 많이 갖고 왔어요?”

실제로 걸어 다니던 여행이 어찌나 고단하던지 나는 지하철에서 건성건성 넘겨본 몇 줄 빼고는 거의 읽지 못했다. “아니야. 너 잘 때 엄마 다 읽었어.” 읽지는 못해도 가방에 넣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한 것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아들아. 네팔에 35일 동안 머물 일정을 잡아 떠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분필과 그 외 학용품과 구호품이 기내수화물용량을 초과하여 무겁기도 하거니와, 진짜로 글자 한 자 읽고 오지 말자 하는 마음으로, 하지만,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시집 한 권 달랑 여권기내가방에 끼워 넣고 다부지게 출발했었다. 하지만 어찌나 후회를 했던지. 그 한 권의 시집 속에 들어 있던 모국어가 하나하나 어찌나 달달했던지. 35일간 떨어져 있던 남편보다도 미처 가져오지 못했던 내 서재 안 여러 종류의 직사각으로 정갈한 등과 표지와 날개를 갖춘 책을 만져보고 싶어 그리웠던 시간들이 지금도 알알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는 습관은 대학 때부터 시작된 것 같다. 당시는 한 시간 반가량 기차 통학을 하고 있었는데 대학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친구 없이 오며 가며 읽으면 50 페이지씩 하루 100 페이지씩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면 300페이지 정도 분량의 도서를 때로는 이틀 혹은 사흘에 한 번씩 반납하고 빌리고 하는 일을 반복하며 도서관에 들락거렸던 기억이 난다. 가난했던 대학시절 책을 살 돈은 없고 읽고 싶은 책은 많고 그리고 무엇보다 집에 오면 여덟 식구가 북적이며 살던 터라 조용히 책 읽을 공간이 없었지 싶었다. 그러던 차에 붙었던 습관치고는 경제적이었다.

요즘도 회의나 모임이 있어 서울을 갈 때면 기차를 탄다. 전보다 눈이 나빠져서 불편하긴 해도 행간이 촘촘하지 않은 시집을 천천히 읽는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을 때도 있고 모바일 뉴스를 보기도 한다. 지인들과 단톡을 주고받으며 가기도 하지만 어쩐지 한 글자라도 펼쳐 눈에 넣었을 때만큼 배가 부르지도 않고 어딘가에 시간을 흘려버린 것만 같아 허망하다는 생각이 드니 얼마나 재미없는 인생인지.

나는 이상하게 기차를 타면 책이 잘 읽힌다. 집에서 읽는 것보다 어딘가를 다니면서, 커피숍에 앉아 있거나, 여행하면서 읽는 책이 더 재미있다. 그래서 박사학위를 받은 기념으로 나는 부산행 왕복 KTX 기차를 태워주고 책을 읽게 해주는 기념행사를 아무로 몰래 홀로 수행한 적이 있다. 시인이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에 펼쳐지는 풍경을 봐야지 책을 왜 보느냐고 모 유명한 시인이 핀잔 비슷한 것을 준 적이 있다. 그에게 차창은 일회의 여행이겠으나 내게 차창은 일상이고 생활이다. 내게 꿈을 준 것은 차창이 아니고 차창을 옆에 끼고 오래도록 읽어 왔던 책이었고 그 책이 보여준 세상이었다. 차창이 보여준 것 이상의 세상을, 기차 속에서 만나곤 하던 그 지혜, 그 지식과 삶을, 그 추억을 나는 늘 붙잡고 싶어 하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장대같이 커 버린 두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꼬맹이였을 때 말레이시아 페낭으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열대과일과 이국음식으로 배뽈록이가 된 녀석들이 수경까지 갖추고 풀장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 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모래사장이 펼쳐진 너른 해변에는 듬성듬성 비치의자들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대부분 70은 모두 넘어 보이는 노인들이 썬텐을 하고 있었다.

비만으로 배가 늘어지고 균형이 망가진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모두 주요 부위만 가린 비키니 차림이었는데, 이리저리 몸을 뒹굴거리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고 더욱이 어찌나 아름다워 보이던지. 저렇게 늙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물론 뚱뚱하고 균형이 망가진 할머니가 아니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할머니로 말이지.

가끔 어깨가 아파 정형외과에 가면 무거운 것 많이 들고 다니는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 읽지도 않으면서 괜히, 안 들고 다니면 불안해서 그 놈의 ‘책 보따리, 불안 보따리’를 가방에서 뺏다가는 다시 넣곤 하는 이런 태도로 줄곧 살아간다면 나도 그 때 페낭에서 만난 할머니처럼 그렇게 잘 늙어갈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유정이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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