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장군의 역사적 평가 오해 바로잡고, 실제 진면목이 제대로 알려지길”

“<난중일기>와 <징비록>에 의해 원균 장군 오해 확산”

“11월 준공하는 ‘원균교육관’ 통해 원균 장군을 바르게 알릴 수 있게 될 것”

원주원씨 평택 종중의 후손인 원성식(62) 씨는 초등학생 때까지 ‘원릉군 할아버지’와 ‘원균 장군’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집안 어르신들로부터 ‘원릉군’에 대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들었지만, 그 누구도 원균 장군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안 어르신들은 원균을 존경했다.

그러한 어르신들의 가르침을 받고 자란 원성식 씨도 원균 장군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가득했다. 원 씨는 인터뷰 자리에서 원균이 오랜 역사 속에서 오해를 받아 왔고, 장군의 진면목이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는 이순신, 원균, 권율을 ‘1등공신’으로 인정하는 교서를 내린다. 이는 그만큼 원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운 것을 증명한다”고 전했다.

원균 선무공신교서 중 일부

원 씨는 “원균 장군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난중일기>에서 발생한다. 이순신은 84번이나 난중일기를 통해 원균을 비난했는데, 후대 사람들은 그것만을 보고 원균이 ‘못된놈’이라고 생각한다”며 “실상은 이순신 장군이 원균 장군과 함께 여러 차례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전승보고서’를 자신의 이름으로만 조정에 보고한 것에 원균 장군이 항의한 것이었다. 전쟁 포상도 이순신 장군과 그 휘하에 있는 군사들에게만 돌아가 원균 장군은 리더로서 이순신을 찾아가 항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순신에게는 ‘투정’으로만 보였고, 자신의 개인적 생각을 일기에 썼다. 하지만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그 일기만 보고 원균을 비난한다”고 전했다.

원성식 씨는 원균 장군이 전사한 칠천량 해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꺼냈다.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왜로부터 대패한 책임을 원균 장군에게만 돌리는 경향이 있다. 류성용의 <징비록>에서는 원균 장군이 전쟁 준비는 안하고 맨날 기생과 술먹고 놀고, 부하들과는 상종을 하지 않아서 전쟁에서 졌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원균은 칠천량 해전을 준비하면서 상소문을 올려 전투전략을 보고하는 등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전했고, “칠천량에서의 패배는 조선조정이 원균과 수군을 몰아붙인 탓에 발생한 것이지, 원균 장군의 개인적 이탈을 패배의 원인으로 몰아가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현재 평택시는 원균 장군을 역사적으로 재조명하기 위해 ‘원균기념관’을 만들고 있으며, 원성식 씨는 원주원씨 평택 종중의 총무로서 원균기념관의 내부전시물을 준비 중이다. 올해 11월까지 준공될 것으로 예상되는 ‘원균기념관’은 원균 장군에 대한 역사적인 오해를 바로 잡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원 씨는 “많은 사람들이 원균교육관에서 바른 역사를 배우길 바라며, 원균 장군의 진면목을 알게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원 씨는 평택시민에게 감사의 말을 남겼다. “그래도 원균 장군에 관심을 갖고,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끝으로 <평택시민신문>에 대해 “<평택시민신문>은 연륜있는 신문사로 지금 평택에서 어느정도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평택시민신문>을 보고 평택의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앞으로 <평택시민신문>이 시민들에게 알리고,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해 주길 바란다. 또한 평택의 미래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신문사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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