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평택 한 책 <조선의 아버지들>을 읽고

김해규 평택지역 문화연구소장 / 한광중 교사

농경사회에서는 대부분의 교육이 가정에서 이뤄졌다. 지체 높은 집안에서야 종학당을 마련하고 선생님을 초빙해서 가르침을 받거나 독선생을 모시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버지나 집안의 어른들께 가르침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지식보다 품행을 우선했다. 앎의 궁극적 목적은 ‘궁행(躬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식은 책을 통해 배웠지만 올바른 가치관과 삶의 자세, 작은 습관은 부모의 무릎 위에서 배웠다. 조선의 선비들이 가풍(家風)을 세우고 가정교육, 부모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 때문이다. 부모 스스로도 자식들 앞에서는 늘 언행을 삼갔다. 훈계하는 방식도 늘 고민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가르침이 어렵다’는 토로가 선비들의 입에서 자주 나온 것을 보면 옛 사람들에게도 자식교육은 참 어려운 과제였던 가 보다.

나도 두 아이의 아비로서 20년 넘게 살다보니 자녀교육이 어렵다는 것을 새삼 절감한다. 세대 간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의 차이도 심각하지만 자식만큼은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함이 지나쳐 갈등을 빚기 일쑤다. 부모의 훈계는 금과옥조(金科玉條)라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고통스럽다. 편히 마주 앉아 이야기하기도 힘든데 엄부(嚴父)들이 대세였던 옛날에는 몇 시간씩 무릎 꿇고 훈계를 들어야 했다. 그것은 어릴 적 내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픈 욕망이 컸던 부친은 옛 사람들의 방식대로 자녀들을 대했다. 늘 엄했고 때때로 당신 앞에 무릎 굻리고 세상을 살면서 배운 지식과 생각들을 전달하려 애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가르침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그보다는 늦가을 하교(下交) 하는 아들에게 주려고 떡 덩이를 들고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던 모습이나 군대 가는 아들에게 보였던 눈물 몇 방울이 오래도록 가슴 깊이 남아 있다. 그래서 교육은 어렵다.

‘밥상머리 교육’은 우리 선조들이 오랫동안 선호했던 자녀교육방식이다. 밥상이 주는 열린 공간과 서로 맛난 반찬을 권하는 사랑의 나눔 속에서 던져지는 몇 마디 훈계가 생각과 삶의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밥상머리 교육의 특징은 지식보다 삶의 자세, 생활의 자세와 관련된 것이 많다. 어른들이 먼저 수저를 들기 전에 밥을 먹으면 안 된다던가 큰 소리로 떠들며 밥 먹으면 안 된다는 것, 맛있는 것은 어른들께 먼저 양보해야 하는 것, 하늘이 내린 밥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과 같은 내용들이다. 그 속에서 감사하는 법과 어른을 공경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공동체의 위계와 질서를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고등학교에서만 근무하다 중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 13년째다. 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착하고 예쁘지만, 공동체생활의 질서를 준수하는 태도나 타인에 대한 배려심, 부모나 교사에 대한 감사함은 옛 학생들과 확연히 다르다. 혹자는 그것을 산업사회의 개인 중심적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석하지만 필자는 ‘밥상머리 교육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밥상머리 교육이 사라지게 된 것은 산업사회와 핵가족화의 영향 때문이다. 산업사회가 발달하면서 집안에 위계질서와 어른이 없어졌고 부모와 아이들이 바빠졌다. 한 두 자녀만 가지면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막내처럼 변했다. 그러다보니 부모를 존중하고 가족끼리 밥상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삶의 지혜를 배울 기회가 사라졌다.

백승종 선생의 ‘조선의 아버지들’을 일독했다. 2017년 평택시 한 책 읽기 선정도서인데다 곧 있을 ‘한 책 토론회’의 사회를 맡아 부리나케 읽어낸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성현들의 가르침에 새삼 고개가 숙여졌다. 시대불문하고 자녀에 대한 기대와 고민은 비슷하지만 풀어내는 방식은 오늘의 우리와 현격한 차이가 있음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선정과정에서 필자는 다른 책을 지지했지만 일독을 하고 보니 참 책 선정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옛 사람들은 10세 이전에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무릎 위에서 가르침을 받고, 그 이후에는 스승을 찾아 교육을 받으며, 출세해서는 세상을 스승삼아 배운다고 했다. 올 한 해 평택시민들이 이 책을 읽으며 가정공동체의 회복, 밥상머리 교육의 회복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를 소망한다. 가정의 회복이 우리사회의 참된 회복의 시작임을 공감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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