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걸의 따뜻한 세상

영랑 심재걸 국제로타리 아카데미 교수

소유란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고 향유란 '누리어 가짐'이라 한다. 사전적 정의로는 그 차이가 불분명하지만 사유재와 공공재, 예를 들자면 소유는 개인 성향의 가짐이란 사유재 개념이고 향유는 집단적인 성향의 가짐과 누림의 공공재 개념이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하지 않더라도 향유할 수 있다. 미술관의 멋진 작품, 감동적인 음악이나 영화 등이 그렇듯 멋진 그림, 음악, 영화의 주인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누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소유와 향유의 상대적인 비교 어록을 보면...

有者 增易陷憂(유자서증이함우) 가진 이는 마저 가지려 걱정에 빠지기 쉽고 無子燐奪易陷患(무자인탈이함환) 없는 이는 빼앗겼다 여겨 근심에 들기 쉽네 若所有慾起憂患(약소유욕기우환) 만약 가지려는 욕망이 걱정근심 일으킨다면 豈人只所有之慾(기인기소유지욕) 어찌하여 우리사람들은 가지려고만 하는가 旣所有不敢享有 (기소유불감향유) 이미 가진 것 온전히 누리기도 벅찰 텐데...

인간을 괴롭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소유욕이다. 돈이든 사물이든 아니면 사람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내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일 때 갖지 못한 괴로움을 수반한다. 소유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고 가진 것을 지켜내야 하기에 또 다른 괴로움이 동반된다. 향유한다는 것은 책임과 의무를 수반하지 않으며, 누리는 그 자체로서 만족할 수 있다. 향유는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내 것, 내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깨달을 때에 가능하다. 자유로울 때만이 얽매임 없이 즐길 수 있어 소유와 향유는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르다. 엄밀히 말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다만 이따금씩 어떤 것들을 향유할 뿐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인생은 나그네 길이요, 요즘말로 rental service를 이용하는 것 같다. 위탁받은 삶이고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은 단지 "그때 그때 잘 빌려서 누림"이고 이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국정을 농단하고 국민을 분노하게 했던 실세들이 서울 구치소에 구속되었다. 대통령, 국내 최대 재벌 부회장, 청와대실세, 행정실세, 비선실세까지 한 시대를 쥐락펴락했던 권력, 재력의 소유자들이 서울구치소에 그들이 탐하는 소유를 영치한 셈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초유의 사태들이 새로운 개혁의 모멘텀으로 ‘개혁의 소중한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적폐 청산으로 ‘한국 병’을 고치고 ‘부조리’도 청산해야 한다. 진보와 보수는 진영논리로만 종북과 골통으로 분열하지 말고 국민의 복지를 위한 소통과 타협의 협치를 구축해야 한다. 치열한 법정 공방과 험난한 공판이 예상되지만 국민들은 이번 '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꼭 필요한 진실이 밝혀지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체제 개혁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모든 국민이 소유를 탐하기보다 향유할 줄 아는 의식의 개혁이 더 필요하다.

세월은 우리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세월은 우리의 슬픔을 씻어주기도 하고 평생 다 못 누린 애석함이나 한을 남기기도 하니 약도 되고, 병도 된다. 소유에는 희생이 뒤따르는 법. 정작 소유하고 나면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다.

조건에 이끌려 다니는 소유로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 순 없다. 현실이 허락한 모든 소유의 세계를 아무런 구속이나 조건 없이 그대로 순간순간 향유하고 나 또한 그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순간을 즐기며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고백인처럼 살고 싶다.

봄바람은 코끝에서 감미롭고 포근하다. 양지쪽엔 작은 들꽃이 다소곳이 피었다. 지난해 무성했던 잡초들도 그 자리를 봄나물에게 내어주는 아량과 겸손함이 있다. 나물 캐는 아낙을 보고 있자니 소박한 마음으로 자연과 더불어 향유하는 논어의 술이편 구절과 비슷한 싯귀가 떠오른다. 요즘 세상에 너무 안이하다고 비판하려는가? 그러면 또 어떠랴.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 굽혀 베개 베니

낙이 또한 여기에 있네.

옳지 못한 부귀영화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은 것.

 

절대적인 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 마침내 심연의 바닥을 치고 오를 때 이 세상에 소풍온 우리들이 정말 아무것도 더 바랄 것 없는 충만한 삶을 한껏 향유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편히 온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듯 남을 위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을 갖도록 노력하고 자연과 더불어 상생하며 타인이 창출한 가치를 음미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한번 주어진 인생을 소유하는데 에너지를 소모하지 말고 향유하는 삶을 살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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