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독자) 전 고덕면장 양건모 씨

고덕신도시 개발로 정든 터전 떠났지만 당현리 율곡마을에 새 둥지 틀어 보람
지금은 고덕 원주민들의 생활대책용지 확보 활동 중

350년 전통의 양씨 가문 집성촌이었던 고덕면 율포2리에서 1945년에 태어나 그곳을 떠나지 않았던 양건모 씨. 공무원이 본업이긴 했지만, 양 씨는 율포2리에서 젖소도 키우고, 농사도 직접 했다. 양 씨는 “그 당시 아침 4시에 일어나서 우유를 짜야했다. 참 부지런하게 살았다”며 당시의 기억을 전했다.

이런 그에게 평택의 고덕신도시 개발 소식은 평생을 살아온 생활터전에서 쫓겨나야 한다는 소리와 같았다. 비록 평생 함께한 그 공간과는 이별해야 하지만, 주위에 함께했던 이웃들과는 이별하고 싶지 않다는 마을주민들의 뜻에 동감하며 양 씨는 율곡마을 이주단지 조성에 앞장섰다. 고덕면장 등 공무원 생활을 했던 경험과 당시 마을주민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었기에 양건모 씨는 이주대책 추진위원회 조합장을 맡게 되었고, 함께할 마을을 위해 힘썼다.

고덕면 당현5리에 옮겨 간 율곡마을의 지반공사 및 도로공사는 2014년에 마무리되었고, 현재 31가구가 율곡마을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내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양건모 씨는 “처음에는 마을조성 신청자가 130여 명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떠나가고 60가구 정도를 생각하고 마을을 기획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계약금도 포기하고 중간에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전하며 율곡마을 이주 추진 동력이 점점 떨어졌던 기억을 설명했다.

돈도 문제였다. 양 씨는 “사람들이 빠져나가다 보니 1만1000여 평의 부지 대금이나 공사대금을 지불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전했다. 당시 양건모 씨와 이주대책 추진위원회 이사들이 자신들이 분양받은 땅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 양 씨는 “다행히 새로 율곡마을에 이주하겠다는 11가구에게 분양을 하면서 대출금은 다 갚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율곡마을 이주단지 조성을 마무리 짓고 난 이후 양 씨는 함박산 상가조합의 연합회장을 맡으며, 고덕 원주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고덕신도시에서 집, 농지, 상가, 공장 등을 소유했던 사람들에게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고덕신도시 내에 6평에서 8평가량 생활대책용지를 지급하기로 돼 있는 상황에서 함박산 상가조합은 원주민들에게 경제성 있는 부지를 얻기 위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양건모 씨는 “원주민들을 한 곳으로 모아 영향력을 높여 원주민들의 이익과 혜택을 높여나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바쁜 와중에도 양 씨는 취미생활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에 평택시 서예인협회 회장을 맡게 되었다. 면장으로 있을 때 서예교실에서 서예를 배운 이후로 서예를 취미생활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시민신문>에 대해 묻자, “예전 공무원생활을 할 때부터 <평택시민신문>을 읽었다. 일간지도 읽지만, <평택시민신문>을 챙겨 보는 것은 지역에 대해 이만큼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가 없기 때문이다“라며 ”공무원 생활은 끝냈지만, 지금도 지역에 관심을 많이 두고 있기 때문에 <평택시민신문>을 지속적으로 구독하고 있다“고 밝혔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