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를 잡던 겨울 추억

박경순 시인/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지부 지부장

[평택시민신문] 남양호에 갔다. 가는 동안 마음은 과연 얼음이 얼었을까, 아니면 허탕을 치는 건 아닐까. 모처럼 마음먹고 나선 발길이 헛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동안 멀리 남양호 보존 생태 운동본부라는 콘테이너가 보였다. 그리고 안정감있는 다리 밑으로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이 보였다. 얼음 위에 다소곳이 놓인 낚시 의자와 낚싯대는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놓여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롭기까지 했다. 다리 밑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빙판을 만들어 놓고 겨울의 위상을 뽐내고 있는 듯했다. 가장자리를 조심조심 밟아가며 호수 위에서 엉덩방아를 찧을까봐 살살 걸어 다녔다.

얼음이 녹거나 갈라져서 물속에 빠지는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얼음이 두껍게 얼었다는 확신이 든 후에 얼음을 지치기도 하고 얼음이 얼은 문양을 카메라에 담아 보기도 하며 모처럼 얼음판 위에서 겨울 정취에 흠뻑 빠졌다. 낚시 하러 오신 아저씨는 널빤지를 썰매로 만들어 이리저리 옮겨 다니시며 고기들의 동태를 살피셨다. 회사에 연차까지 내고 왔는데, 며칠 째 고기가 입질을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비상식량으로 준비해 오신 비스켓을 나눠 주시는 손길에서 겨울 추위가 녹아 내렸다.

참으로 오랜만에 얼음판 위에서 얼음을 지치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동심에 푹 젖어 볼 수 있었던 하루였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벼를 다 베고 난 논은 아이들의 겨울 놀이터였다. 일부러 물을 가둬 놓은 건지 아니면 웅덩이 같은 곳이 있었던 것인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동네 어귀에는 아이들이 모여 겨울 해가 다 저물도록 놀 수 있는 얼음판이 있었다. 나무판자에 굵은 철사로 날을 만든 외발 썰매로 씽씽 달리던 고학년 남학생들, 두 개의 날로 된 썰매에 앉아 있는 동생을 밀어 주는 언니들의 수고가 참으로 정겨웠다. 그것도 없는 아이들은 비료 푸대를 깔고 앉아 엉덩이가 얼얼하게 얼음을 지쳤다. 그러다가 가장자리 얼음이 녹은 곳에 발이 빠지면 ‘메기를 잡았다’ 며 아이들이 놀려 대기도 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짚단과 성냥으로 불을 지펴 젖은 옷을 말리느라 불 가까이 서 있으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누런 콧물들을 양 소매에 쓱쓱 문지르면서도 마음이 넉넉하던 그 시절이었다.

한편에서는 팽이치기 놀이, 연날리기가 한창이면 뉘엿뉘엿 저녁 해가 저무는 동네 어귀에서 엄마들의 목청껏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이름을 크게 부르시며 저녁 먹으라는 소리가 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타고 온 누리에 가득 퍼지는 듯 했다.

메기를 잡았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며 사용했지만, 음악 시간에는 ‘메기의 추억’이라는 노래를 배웠고 지난 연말에 친구는 크리스마스 행사에서 영어로 노랫말을 낭송한다며 내게 보내 온 내용 속의 ‘메기’는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었다. 지금의 아이들이 ‘메기 잡았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물론 요즘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신조어들을 들으며 나는 낯설음을 느낀다. 시대에 뒤처지고 있는 자신을 어쩔 수 없는 구세대로 인정하기도 한다. 추억이란 진주같은 것이 아닐까. 모래가 조개 속에 들어가 처음에는 이물질처럼 겉돌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눈부신 진주가 되듯이 그때는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하다고 느꼈지만 모진 세월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추억이니 말이다.

얼마 전 겨울왕국이란 에니메이션이 흥행을 했다. 겨울이란 꽁꽁 얼어붙은 추위를 녹여 줄 수 있는 따뜻함이 더 필요한 계절이기에 눈부시고 아름다운 왕국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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