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읽기

나는 정의롭고 친절한 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품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소집단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문화의 질은 그 구성원의 2 퍼센트가 새로운 비전을 가질 때 변화될 수 있다.

조종건

평택샬롬나비 사무총장

(사)한국시민교육연합

사회통합위원장

작은 사건이 한 국가 또는 한 시대 역사의 물꼬를 트기도 한다. 1770년 얼음이 들어 있는 눈뭉치를 맞고 대응한 영국 군인들의 사격사건이 1776년 미국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이 1차 세계대전의 발단으로, 탁월한 참모의 전문적 조언보다 자기 과신이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정윤회 문건을 찌라시로 안일하게 인식한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탄핵을 당했고 새해에도 한국사회 전체가 요동치고 있다.

작은 사건들의 엄청난 폭발성 앞에서 국민의 사소한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문화의 힘을 생각해본다. “사소한 일에서도 개인이 스스로의 권리를 대담하게 주장하는 일이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민족에게서는 어느 누구도 그 민족이 보유한 최고의 것을 빼앗으려 시도하지 못한다. (중략) 고대에 로마 민족이 가장 발달한 사법을 가졌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소한 권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국민 의식에 대한 예링의 통찰력이다.

예링의 통찰력에 기대어 필자가 경험한 행정기관 주차단속 범칙금 예를 두 가지 들어보겠다. 첫째, 이명박 서울시장 때 강동구에서 경험한 일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평택에서 강동에 있는 둔촌주공아파트 종합상가 맞은편에 차를 대려고 하였다. 오후 8시가 넘었지만 이곳과 주변 상가지역은 차를 댈 수 없게 만원이었다. 그 건물은 물론 주위에 공영주차장도 없었다. 건물 앞에 차를 세워놓고 4층 사무실에 올라가 주차장소를 묻고 내려와 보니 범칙금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출퇴근 시간도 아니고 비교적 한가한 때에 편도 5차선 도로에 차를 잠깐 세워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강동구청을 찾아갔다. 거기까지 찾아갔을 때는 비합리적인 단속에 항의하기 위해 온 것이라 알았을 텐데 주차단속원은 오만했다. 주차를 해야만 했던 경위를 설명하고 강하게 항의했다. 단속원은 범칙금 스티커가 이미 발부되었으니 여기서 해결은 어렵고, 이의신청을 하면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이의신청을 했지만 9년째 범칙금 통지서가 날아오고 있다. 담당자가 누군지 스마트폰으로 사진까지 찍었는데도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시민은 공무를 담당하는 이가 한 말을 약속이라고 믿지 않겠는가?

두 번째는 평택 세교동의 한 아파트에 살 때의 경험이다. 중고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필자 직업의 특성상 늦은 밤에 아파트에 들어오면 주차공간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느 날은 주차장을 여러 번 돌다가 할 수 없이 아파트 인근 차도에 주차를 했다. 평소 5대를 주차할 수 있었던 아파트 진입로에 미관과 안전 때문이라며 주차금지용 장애물을 설치해 주차공간이 그만큼 줄어든 게 주차를 더욱 어렵게 한 이유이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범칙금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주차단속원은 “도로에는 밤 시간대 주차는 가능해도 오전 8시 30분 이전에 차를 이동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아파트 주민 누군가가 매일 주차범칙금을 내야만 하는 시스템이다. 아파트 세대수에 비해 주차 공간수가 부족하고, 게다가 차량을 2대 또는 3대까지 보유한 세대도 있으니 주차는 그야말로 전쟁이 될 수 밖에... 우리 시대 아파트 건설의 현실을 인정한 인허가 제도의 문제로만 치부할게 아니라 대안을 찾아볼 수도 있다. 세대당 주차지정석을 하나씩 주고 두 대 이상 주차 세대는 지정석 외에 비어 있는 곳에 주차하도록 하면 주민갈등이 최소화되지 않을까? 아파트 주차난의 상당부문은 정책 실패인데, 해당 기관이나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불편한 삶을 사는 국민이 벌금을 내고 있다.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에 의하면, 사회구성원의 2%가 문화를 바꿀 수 있다. “정의롭고 친절한 세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품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소집단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 문화의 질은 그 구성원의 2%가 새로운 비전을 가질 때 변화될 수 있다.”

국민 다수의 작은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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