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평화이야기

임윤경 평택평화센터 사무국장

[평택시민신문] 얼마 전, [루쉰의 편지]를 읽었어요. 사제지간이었던 루쉰과 쉬광핑은 한 통의 편지를 시작으로 열정적인 연애에 돌입하고 그로부터 몇 년간, 두 사람은 쉬임없이 편지를 주고 받는데 그 편지 묶음이 바로 이 책 내용이에요. 20세기 동아시아 최고의 문장가이며 세대와 관습을 뛰어넘은 사랑(루쉰은 유부남, 쉬광핑은 20대 제자였다)이었고 격변의 중국 근대사를 관통하던 시절, 이 정도 배경이면 당대 최고의 ‘스캔들’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지만, 그건 절대 오해에요. 놀랍게도 이 책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거의 나오지 않아요. 보통의 연애편지에서 볼 수 있는 사랑표현이나 애정의 과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어요. 그런데도 편지에는 둘 사이의 소통과 감응의 흔적이 글자마다 진하게 배어 있어요. 그들에겐 사랑이라는 단어를 동원하지 않고도 서로 나눌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았던 거지요. 시대에 관하여, 문학에 관하여, 일상에 관하여, 친구들에 관하여, 적들에 관하여, 또 그 무언가에 관하여. 쉽게 말하면 그들은 삶 전체를 ‘통째로’ 주고 받았던 것 같아요. 그들은 사랑을 확인하고 확인받는 일보다 삶을 함께 만들어 가는 일에 더 골몰했던 거에요. 이게 바로 루쉰과 쉬광핑의 저력이자 상대를 사랑하는 방식이었어요.

평택시민촛불을 하면서 알게 된 고3 청소년들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요즘 10대들은 100일 기념이 아니라 ‘투투데이’(22일)를 기념한다고 해요. 그만큼 연인들의 호흡이 짧아졌다는 뜻이겠지요.

지금 청소년들은 드라마를 통해 연애를 배우고, 기술을 습득해요. 요새 뜨는 드라마 [도깨비]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건 작품 자체가 아니라 남자주인공의 이미지에요. 부와 권력, 말끔한 외모에 지독한 순정, 그리고 남성적 카리스마까지. 드라마가 그려내는 건 ‘지금, 여기’의 사랑이 아니라 ‘그때 거기’, 다시 말해 오래전에 지나간 사랑의 이미지 혹은 그림자를 그려내지요. 현실을 바탕에 두지 않는, 이미지로만 배우는 연애. 그럼에도 학교에선 제대로 된 성교육을 제공해주지 않으니 당연히 대중문화 속 연애방식이 청소년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지요. 연애의 주기가 짧은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내 안에 사랑을 지속할 힘과 에너지가 충만하지 않으면 대상에 상관없이 그냥 끝나버리는 게 연애잖아요.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싶다면, 연애다운 연애를 오래도록 하고 싶다면, 내가 상대방의 운명을 바꾸어줄 만한 능력을 가지면 돼요. 그 능력은 돈을 많이 벌거나 스펙을 쌓거나 연애기술을 배우는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 능력을 터득하는 길은? 오로지 독서, 공부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는 건 엉망인데, 사랑은 멋지게 되는 경우는 없어요. 절대! 삶에 대한 통찰력이 없이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사랑을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정유년이에요. 정(丁)은 촛불이라는 뜻이며 유(酉)는 닭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만물의 성숙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진 글자이기도 해요. 그러므로 올해는 촛불 아래에서 나와 만물의 성숙을 위해, 책을 손에서 놓지 말고, 배우기를 멈추지 말아야하는 해이기도 해요. 뭔가 특별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사랑을 통해 내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책을 놓지 않고 공부를 해야 해요. 그게 동력이 되어 사랑하는 이에게 뭔가 ‘줄’ 게 생기는 거예요. 전혀 다르게 변한 나를, 나의 싱싱한 일상을, 그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진 선물이 또 있을까요?

정유년, 우리모두 삶을 사랑해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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