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감각과 안중시장이 번성해 성공했지요”

안중시장 활성화를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
<평택시민신문>이 읍면동과 전통시장에 더 많이 관심가져 주길

피츠버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한국은행에 들어가 있는 큰 아들, 한국 3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삼정회계법인>에서 일하고 있는 둘째 아들, 고려대 법대를 나온 딸을 둔 이계헌 씨의 학력은 초졸이다. 어린 시절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학업을 포기한 이 씨는 자녀교육에는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아 아낌없이 투자했다.

이 씨의 투자는 경제력이 뒷받침해줬기에 가능했다. 중학교도 가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던 유년시절을 보낸 그가 이제는 성공한 상인이자 한 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그의 성공신화는 노점상에 뿌리를 둔다. 이 씨는 15세 때 노점상 일을 시작했고, 어느 정도 돈을 모아 자전거를 구입하여 유통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씨는 “그 당시 자전거는 지금의 자동차와 마찬가지였어. 비싼 돈 주고 자전거를 사는 게 부담스럽긴 했지만,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했지. 그 이후에도 투자할 기회가 있으면 과감하게 투자했어”라며 성공의 비결 중 하나가 투자감각이라는 것을 밝혔다.

또한 과거 안중시장의 인기도 성공의 또 다른 이유라고 설명한다. 이 씨는 1965년, 안중시장에 본인 소유의 가게를 냈다. 6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안중시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잡화점을, 이후에는 회사단체복을 판매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그만큼 돈을 모을 수 있었다. 이계헌 씨는 “그 당시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쓰리꾼(소매치기)들이 활개를 쳤어.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자기 지갑이 도둑맞는지 금세 알 수가 없는거야”라면서 그 당시 안중시장의 인기를 묘사했다.

하지만 지금의 안중시장은 이 씨가 설명한 과거와는 다르다. 이제는 사람과 사람이 서로 밀리기는커녕 어깨가 부딪칠 일 없이 한산하다. 교통이 좋아졌고, 도로변 점포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교통이 좋은 곳에 들어왔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장이 들어서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었다.

“나는 흙수저였는데, 내 자식들에게는 은수저 정도를 물려줄 수 있었어. 근데 지금 시장 형편을 보면 흙수저가 은수저나 금수저가 되기 어려워진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오늘의 사회 현상이 시장의 역사 속에 들어 있음을 시사했다.

이 씨는 안중시장 번영회장을 10년 동안 역임하고, 이후에도 시장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면서 시장 개보수, 주차장설립 등의 성과를 내며 조금씩 시장을 살리고 있지만, 아직은 만족스럽지 않다고 전한다. 지금은 40여 년간 운영하던 상회의 문을 닫고 노후를 즐기고 있지만, 계속해서 시장의 번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계헌 씨는 <평택시민신문>을 스크랩할 정도로 신문을 열독하는 독자다. 이 씨는 “평택을 알려면 <평택시민신문>을 읽어야 한다”며 신문을 구독하는 이유를 밝혔고, “평택시민신문이 잘되면 평택시가 잘된다”면서 지역신문 활성화를 기원했다. 또한, 읍면동이나 전통시장과 같은 세부적인 곳에도 관심을 두며 많은 보도를 해 줄 것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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