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여유

영화 속 풍경 < 천리안 < 01421

이정옥 비전고등학교 학부모 독서모임 <호시탐탐> 회원

[평택시민신문] 2000년에 가입한 천리안 여행 소모임이 올해로 16년째,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속 풍경은 영화와 여행이라는 연결고리로 묶인다. 혹자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인터넷 상에서 만난 다양한 연령대의 전국구인 사람들이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의구심을 갖는다. 인연을 맺는다고 그 끈이 다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풍경’은 다섯 명으로 시작해 한창일 때는 스물 대여섯 명 정도의 제법 큰 규모로 자리매김했고, 짧지 않은 시간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이제 남은 서울, 인천, 경기, 강원, 대구의 열댓 명의 식구들은 십수 년 후에도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스쳐 듯 다녀간 많은 사람들 중에는 끈이 끊어진 것이 못내 아쉬운 인연도 있고, 누군가는 기억조차 남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인연은 아쉽다고 지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싫다고 끊어낼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둘 이상의 만남에는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역할이 존재한다. 그것을 소홀히 하게 되면 어느 순간 멀어진 관계를 마주하게 된다. 억지로 붙잡아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이 지점에서 나만 잘한다고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인연도 놓을 때가 된 것이다. 그동안 영화 속 풍경에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유지 될 수 있었던 비결이라면 구성원 간의 적극적, 자발적으로 참여가 아니었을까.

나무는 해를 거듭하며 나이테를 새긴다. 사람은 만나는 사람으로 나이테를 갖는다. 나무의 무늬가 그 해의 온도와 바람과 햇빛에 따라 달라진다면,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무늬가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새겨진 한 줄의 나이테는 그들의 것이다. 요즘 주된 관심사는 인생 2막의 준비이다. 20대에는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지나고 보니 찬란했던 - 그때는 미처 몰랐던 20대와 뭔가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착각했던 30대와 아무것도 없이 맞은 40대의 한 가운데에서 여전히 불안하고 얼떨덜하다. 삶의 터전은 제각기 다르지만 살다가 휴식과 위로가 필요한 때 서로를 찾는다. 싱글을 위한 회갑 기념 여행을 준비하고 있고, 여전히 1년에 두어 번 쯤 영화 속 풍경처럼 멋진 곳에서 만나 밤샘 수다와 산책을 할 것이며, 영화와 여행과 책 얘기로 공통분모 찾기에 열을 올릴 것이다. 어느 자리에 있든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함께한 시간에 비례해 넓고, 깊고, 진한 어디에도 없는 멋진 무늬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 틈에 늘어만 가는 주름의 하나쯤은 그들과 나눈 웃음 때문이라는 것이 훈장이다.

세밑에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번호들을 들여다보며 한 해를 정리하게 된다. 일회성 번호들과 여러 해를 넘겨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끊어진 인연들의 번호들을 지워야 할 시간이다. 삭제 버튼을 누르기 전에는 여러 생각이 든다. 서운하게 한 것은 아닌가? 잘 지내는지 안부라도 물어볼까? 그러면서 인연에 소홀하지 말자, 관리해야겠구나, 새해 인사 문자라도 한통씩 넣어야겠네. 흘러가다보면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될는지 예측 불가능하지만, 옷깃만 스쳐도 인연, 충실해야겠다. 나는 혼자 존재하지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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