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경의 일상 속 평화이야기

임윤경 평택평화센터 사무국장

꺼지지 않는 촛불의 힘이 느껴지는 연말입니다.

촛불집회가 진행될 때마다 모여드는 엄청난 사람들과 그들이 내뿜는 열기. 그 힘은 강력하고 강렬합니다.

지난 26일이었던가요, 5차 촛불집회에는 양희은이 나와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들으며 잠시 옛 생각에 잠기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저 또한 옛 생각에 흠뻑 잠겼습니다.

 

 

 

‘우리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상록수’ 노래는 제가 고등학생이던 1987년, 울산연합고교문학동아리 [세리을]이라는 불법(?) 단체의 회가로 불리던 노래였습니다. 그 동아리 소속으로,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의 딸로, 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온 몸으로 겪으며 부르고 또 불렀던 노래입니다. 일찍 사회의 부조리를 알아버린 여고생이 친구들과 손잡고 부르던 노래. 상록수는 어렸지만 치열한 현실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시절을 통과하려했던 청소년들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시민 190만명이 모인 집회에서 ‘상록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마음껏 울컥했습니다.

‘상록수’는 아침이슬을 작사작곡한 김민기의 1977년 작품입니다. 1977년은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하기 2년 전이며 박정희의 정권 연장을 위해 수많은 피와 수많은 검열, 수많은 활동 정지, 수많은 탄압과 보이지 않는 방해가 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김민기는 이름 자체도 검열대상이었기 때문에 가수는 물론 생계도 보장받지 못하는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김민기는 생계를 위해 인천 부평공단에 있는 공장에 취직을 했고 아침마다 공부를 가르치던 노동자의 합동결혼식을 위해 만든 노래가 바로 ‘상록수’입니다. 이 노래는 양희은의 음반에 ‘거치른 들판에 푸르른 솔잎처럼’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상록수’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애창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노래입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당시 노무현 후보가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르는 선거 방송을 제작해 공감을 얻었고 3주기 추모 행사에 ‘상록수’ 노래를 음반으로 제작하려 했으나 정권에 찍힐 까 선뜻 부르겠다고 나서는 가수가 없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김대중 정부 때는 IMF 환란을 함께 헤쳐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정부의 공익광고 캠페인 송으로 TV 방송을 타기도 했습니다. 한 시대의 금지곡이 느닷없이 국가적 캠페인 송으로 변신하는 놀라운 드라마는 그대로 한국 현대사의 드라마틱한 굴곡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상록수’를 캠페인 송으로 듣던 IMF 시절에 태어난 ‘IMF둥이’들이 수능을 친 올해. 촛불집회에서도 ‘IMF둥이’들이 나와 자유발언을 하며 번뜩이는 삶의 단면들을 보여줍니다. ‘상록수’를 부르며 고교시절을 보냈던 세대가 이제는 중년이 되고 상록수를 캠페인 송으로 들으며 자란 세대가 촛불집회에 나오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돌고 도나 봅니다.

평화는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렇게 돌고 도는 역사 속에서 어떤 사건과 능동적으로 교감하는 능력, 함께 노래 부르며 외치는 간절한 마음, 촛불을 드는 고요한 능동성. 그것이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한계상황 혹은 문턱, 이걸 넘지 못하면 늘 쳇바퀴를 돌 수 있는 그 지점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상록수’를 청소년과 중년들이 함께 부를 수 밖에 없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우리는 평화를 만들어 갑니다. 촛불을 들고 고요한 능동성을 가지고. 하지만 그 속에는 엄청난 힘과 기운들이 생동감 있게 넘실거립니다.

이번주에도 광화문행 퇴진버스는 달립니다. 우리 모두, 평화를 위해, 새로운 세상을 위해 광화문행 버스를 타고 촛불을 밝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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