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수 시인

인간의 역사에서 과학에 의한 기계문명이 편리와 수월함을 넘어 그 지대한 공헌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이 기계문명에 종속되어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 작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시에서 영감을 얻어 세상의 정보를 손바닥에서 보게 하고, 사람의 수고를 덜어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했다. 시는 과학과 문학이 공존하여 차가운 사회를 포용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바라봐주는 역할을 한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And Eternity in an hour.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순수를 꿈꾸며(Auguries of Innocence)」의 첫 구절이다. 애플사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생각이 막힐 때마다 이 시를 읽고 영감을 떠올리며 마음에 새겼다는 이야기는 전 세계를 인문학의 열풍을 가져왔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작은 것에도 거기에 세계의 본질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시와는 상관없는 것 같은 IT기업의 CEO가 기술을 앞세워 경쟁하지만 기술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때 먼저 사람을 알아야 하고 것이고, 그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사람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비자카드를 창업한 디 호크(Dee Hock)도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12세기 페르시아 시집<루바이야트>를 늘 곁에 두고 읽었다(루바이야트는 오마르 하이얌이 쓴 페르시아어로 된 4행시 시집이다.) 또 열사의 땅 두바이에 스키장을 만들고 세계지도를 닮은 인공섬을 건설한 세이크 모하메드(Sheikh Mohammed) 역시 시적 상상력에서 영감을 얻었다. “ 내 능력의 한계는 상상력의 한계와 같다”고 한 그는 100여편의 시를 쓴 시인이기도 하다.

“내게 있어 과학과 예술은 둘 다 인간의 생물학적 필요를 떠나 궁극적 가치를 지닌 우리의 영혼의 표현이다”라고 타고르와 아인슈타인은 1930년 여름 독일에서 만나 이런 대화를 하였다(1994년 에이브러햄 파이스펴낸 <아인슈타인이 여기에 살았다. Einstein Live Here> 책에 기록되었다) 아인슈타인의 인문학적 지식과 재능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시인인지 물리학자인지 모를 정도로 시적인 표현이다. 그의 사상적 배경도 문학적 상상에서 기인되지 않았을까?

과학적 문명도 결국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기계를 만드는 사람도, 소설을 쓰는 사람도 결국 인간이기 때문에 공유하는 마음이 있고 물리적 가치를 떠나 영혼적 가치를 추구하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볼 때, 논리와 상상력의 이질적인 본질도 인간이 생각하는 상상 속에 있었다. 이제껏 인간이 성취하고 창조한 모든 것의 뿌리는 시의 뜨락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2월! 소요음영(逍遙吟詠) 해본다.

못 다한 것들이 아쉽고 허전하다. 시간의 회한도 마음 깊은 곳에서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하다. 사랑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나눔의 시간이 적었음을 자성해 본다. 삶의 여러 모양으로 영혼의 깊은 상처를 입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사람의 곁에서 함께 울어주지 못한 가난한 마음도 후회스럽다. 그리고 오늘도 기계적인 삶에 대한 자기점검을 간과한 점도 참으로 후회스럽다. 그러나 다시금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발견하고, 순간에서 영원을 꿈꾸며 용기, 평화, 사랑, 용서, 화해, 자유, 명상, 치유까지 따뜻한 시인의 시선으로 인간답게 바라보고 실천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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