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경의 일상 속 평화이야기

임윤경

평택평화센터 사무국장

올해 초, TV에서 하는 밤샘토론을 본 기억이 나요. 나온 패널은 유명한 작가이자 전직 장관으로 대부분 토론에서 따로 자료준비를 하지 않고 물컵 하나만 가지고 들어가는 걸로 유명하다고 해요. 아마 오랜 시간 정계 안밖의 활동을 통해서 본인만의 논리가 충분히 정립됐다는 이야기일거예요. 소문처럼 그가 풀어내는 논리는 정말 빈틈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시원시원하기도 하고. 그 논리에 반박하기 위해선 그 이상의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 같더라구요. 말과 끼가 재산이요 밥그릇이라고 하는 말이 그를 보면 실감이나요. 그런 비범한 능력을 가진 그지만 때론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해요. 옳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인데 왜 같은 진보진영의 사람들에게도 비난을 받을까요? 그가 펼치는 토론을 밤새 보며 생각하게 됐어요.

에어쇼 반대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에어쇼를 보러 밀려들었죠. 그 속에서 캠페인 진행팀은 작은 스피커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풀어내요. 왜 에어쇼를 반대하는지, 에어쇼는 누구를 위한 쇼인지, 전투기가 내는 소음의 피해를 자세히 이야기하지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마이크 소리에 눈살을 찌푸리거나 욕을 하며 과잉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수도 있겠다, 다음에는 에어쇼에 오지 않아야겠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지나가는 분들도 계셨어요. 아마 우리 이야기에 공감을 했다는 뜻일거예요. 그럼 여기서 질문. 그 사람들의 공감은 어떻게 일어난 걸까요? 우리 이야기가 정당해서 일까요? 우리 행동이 옳기 때문일까요? 아님 이야기하는 사람의 목소리, 발음, 태도나 그 사람의 고유한 기운 때문일까요.

백남기 농민이 선종(善終)하셨어요. 백남기 농민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방송인 김제동이 빈소를 찾았다고 해요. 조문을 마친 김제동은 경찰의 강제부검을 막기 위해 밤새 빈소를 지킨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해요. 그가 정확하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SNS를 뜨겁게 달군 ‘김제동의 인간미’나 성주에서 그의 발언, 국가 폭력에 맞서 힘들게 싸우는 곳을 찾아가 나누는 그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무슨 이야기를 했을 지 짐작이 갈거예요. 아마 그날 이야기에는 억센 사투리가 있었을 것이고 정확한 정세를 파악하는 쉽고 간결한 문장이 있었을 것이며 그가 살아온 만큼의 사유가 있었을 거예요. 더욱 중요한 건 빈소를 지키는 이들을 보살피는 따뜻한 말들이 오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봐요. 그럼 여기서도 질문. 김제동 이야기에 들어있는 공감 능력, 쉬지 않고 말을 건네지만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고 오히려 힘이 되는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억센 사투리일까요? 특유의 따뜻함 일까요? 아님 언변을 단련하는 다른 기술을 배운 걸까요.

 옛 말에 중구삭금(衆口鑠金;뭇사람들의 입은 쇠도 녹인다)이란 말이 있어요. 말은 말을 낳고 또 다른 말들의 씨가 되어 세상에 뿌려진다고 해요. 그 씨들은 순식간에 괴물이 되어 누군가를 죽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를 살리기도 한다지요. 그럼 소통한다는 것, 타인에게 말을 건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TV 토론회에 나온 그는 청년시절 운동권이었어요. 캠페인을 나온 우리들도 대부분 청년시절을 ‘운동권’이라는 영역에서 생활을 했어요. 운동권에서는 흔히 ‘의식화’를 말해요. 캠페인의 중요한 목표도 일반시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니 ‘의식화’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요.

‘저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 옳은 이야기이긴 한데 왠지 기분 나빠’
 ‘저 사람이 하는 말은 맞긴 맞는데 왜 내가 소외되는 것 같지?’
 ‘저 사람 말이 맞는데 영~ 정이 안가.’
 ‘바른 소리하는데 왜 싸가지가 없어 보이지?’
이런 느낌들을 받아본 적 없나요?

여기서 의식화의 주체나 객체를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에요. 의식화의 중요한 방점은 늘 인간에 대한 배려, 존중, 인간에 대한 사려 깊은 성찰에 있었다고 봐요. 내가 하는 일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해도 그걸 말로 풀어내기 위해선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해요. 내가 하는 일이 옳고 정당하니 너는 당연히 해야 해 하는 논리는 타인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죠. 오히려 반감만 더해진다고 봐요. 김제동의 언어에서는 내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귀한 시간, 귀한 사람으로 대우받는 느낌. 그래서 이곳에 앉아 촛불집회하는 것이 좌파나 종북이 아닌 귀한 일을 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소중한 일을 한다는 느낌, 지지받고 응원받는 느낌을 받아요. 누군가에게 지지받고 응원받는다는 느낌이 들면, 존중받고 배려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우리는 팔걷어 붙이고 그를 따르게 돼죠. 의식화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 같아요.

옛 사람들은 저마다 이야기꾼들이었다고 해요. 하다못해 두둥실 떠 있는 보름달 하나만 있어도, 별의별 ‘구라’를 풀어냈다지요. 구라가 한자로 ‘입 구(口)’, ‘비단 라(羅)’라는 얘기도 있어요. 입에서 비단실처럼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는 뜻이라지요. 믿거나 말거나^^ 지만 말을 비단실처럼 곱게 내뱉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 또한 말을 잘하지 못하는 한 사람으로,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 들려주는 연습을 오늘부터라도 해볼까봐요. 존중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서 말이에요. 우리 함께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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