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다 (하)

몽골의 초원과 별반 다르지 않은 본격적 시베리아 벌판

한도숙

시인, 농민

바이칼호변을 따라난 환바이칼 철도의 한쪽 끝을 붙들고 마지막 숨을 헐떡거린다.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군이 일본군에게 참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러시아군은 환바이칼 구간철도가 완성되지 않은 탓에 보급이 원활하지 못해 전쟁에 패한 것이라고 한다. 보급이 중단된 러시아군은 만주에서 나는 콩을 먹게 되고, 콩은 단백질은 우수하지만 ‘이소플라본’이라는 여성홀몬과 유사한 물질이 있어 여성화된 병사들이 전쟁에 지게 됐다는 우스개소리도 있다.

이루쿠츠크의 시작은 나폴레옹과의 전쟁으로 인해 시작된다. 러시아의 귀족청년장교들의 파리여행은 러시아에도 경험주의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혁명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봉건제도를 타파하겠다는 젊은 혁명가들의 12월 혁명은 실패로 끝났다. 그들은 유형의 도시 이르크츠크에 보내졌다. 그들을 ‘데카브리스트’라고 한다. 젊은 혁명가들을 따라온 그들의 여인11명에 의해 이르크츠크는 문화의 도시로 발전해 푸시킨에 의해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그런 문명의 도시에 혈기왕성한 조선의 지식인과 혁명운동가들은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1919년 항일무장투쟁과 한국공산당창당을 협의하고 이끌었던 것이다. 이후 22년 조선공산당 창당에 이르게 된다. 중국보다 무려 7년이나 앞서 창당이 된 것이다.지금도 남아있는 당사 건물은 붉은 벽돌과 흰색으로 깨끗하게 단장돼 오페라음악당으로 사용 중이란다. (이창주. 조선공산당 비사)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를 연상케하는 목각조형물

앙가라 강변에는 레닌동상보다는 카자크인의 동상이 우뚝 서있다. 카작크인이라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래 ‘스텐카 라진’이 생각난다. 볼가강을 거슬러 배를 타고 진격하는 농민군들에게 반란의 당위성과 아름다운 공주와의 사랑을 그린 노래로 러시아 민요가 됐다고 한다. 학민사 대표 김학민에 따르면 유인태 전의원이 잘 불렀다고 한다. 1690년 카자크 농민군과 1980년 한반도 남쪽의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어떻게 동일하며 어떻게 달랐을까. 더군다나 러시아에서는 데카프리스트 들의 혁명은 혁명으로 인정하지만 15~16세기 농민반란은 혁명사에 포함하지도 않는다는데 말이다.

 앙가라강에 뛰어들다

민속촌 구경을 마친 일행들은 저녁도 먹을 겸 ‘반야’라고 하는 이곳 전통식 사우나탕에 들렀다. 사우나탕은 달궈진 돌에 물을 부어 증기를 만들어 자작나무 가지로 몸을 두들겨 혈액순환을 촉진해주는 방식이다. 그리곤 몸이 더워지면 앙가라강으로 뛰어 드는 것이다. 기온이 18도 밖에 나가지 않아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막상 몸이 달구어지고 나니 강물로 뛰어들지 않을 수 없다. 무조건 강으로 뛰어들고 나니 나이 지긋 하신 분들도 따라 나와 강에 몸을 던진다. 몇 차례하고 나니 출출해져 ‘사슬릭’이라는 돼지고기 꼬치구이로 저녁을 먹었다

알흔섬 부르한바위

알혼섬은 전 세계 샤먼들의 성지라고 한다.  가는 곳마다 서낭당이 보이고 나무마다에도 오방색 천을 둘러 어렸을 때 본 서낭당과 너무도 닮아 있다.
‘알혼섬’을 우리말로 풀어보면 ‘알온섬’, ‘알논섬이 될 수 있다. 이는 우리민족의 난생설화의 오랜 버전이다. 알이 왔던지 알을 낳았던지 하는 말이 ‘알혼’이 되었을 것이다. ‘부르한’ 바위는 ‘불알’ 바위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부랄’, ‘부르알’, ‘부르한’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부르한 바위는 두 쪽으로 마치 음낭’과 같은 형상이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어떤 상당한 기운은 사람을 압도한다고 한다.

광복절 기념식과 평화기원제를 올리다

일행들은 가져간 제수를 차리고 광복절 기념식과 평화기원제를 올렸다. 행사는 비가 오는 가운데 진행돼 정신이 없었지만 평화기원제 헌시를 쓰고 낭송했다.

저녁을 먹고 ‘바냐’를 하러 들어갔다. 달궈진 돌에 물을 뿌리고 땀을 내고 있는데 묘령의 아가씨가 비키니 차림으로 들어온다. 러시아의 삼대보물이 무엇인가. 첫째가 보드카다. 많은 사람이 즐겼지만 그로인해 사망자도 부지기수지만 여전히 러시아인들의 사랑받는 술이다. 두번째가 불곰이라고 했나? 러시아인들의 속을 모르겠다고 할 때 곰이라고 했다. 러시아하면 상징이 붉은 곰이다. 나폴레옹과 싸움, 히틀러와의 싸움을 가당치 않게 물리친 러시아인들의 음흉한 모습을 불곰을 빗대 말하고 있다. 세번째가 러시아 아가씨들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 러시아 보물이 내 앞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앉아있는 눈호사(?)를 했다. 하기야 내가 눈 둘 곳이 없어 쩔쩔매고 그 아가씨는 애인과 쫑알대느라 이방인에겐 관심도 없었다. 새벽 5시에 깨어 스텝언덕을 오른다. 이렇게 초원을 밟아보는 것이 이 땅을 이해하는 방법이리라. 스스로 몽골식으로 이름지은 ‘바람이 모이는 산’을 올랐다.  짧은 사초들은 이미 꽃을 피우고 열매를 퍼트렸다. 두메양귀비 노란 꽃들이 인사한다. 바위솔도 아침이슬에 반짝인다. 용담꽃도 얼른 피우고 겨울을 맞아야지...  다시 걸음을 옮겨 바이칼 호수로 내려간다. 오오 ! 귀한 것 오직 노고단에 예약하고 올라야 볼 수 있는 물매화가 무리를 이루고 피어있다. 물매화가 하얀 꽃잎을 펼치고 세속의 때를 정화하시라고 반짝거려 인사한다. 호수는 고요하다. 아침햇발을 받으며 환하게 주위를 비춰 환상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탄성으로 화답한다. 저 깊고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태고의 숨소리를 함께 한다.

300여 개의 강과 내가 호수로 흘러드는데 흘러나가는 곳은 앙가라 강 하나 뿐이란다. 그런데도 수위에는 변동이 없어 물이 빠져나가는 곳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고 있단다. 속설에는 몽골에 있는 흡수골호수와 땅 밑으로 연결 되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여행은 계속되지만 이제 눈을 붙이고 싶다

이번 여행은 농업계의 ‘호병계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 농특위 위원장이셨던 분이 농민들 중심으로 한반도와 이를 둘러싼 동북아의 현 상태를 점검하고 미래평화를 그려보자는 제안으로 함께 하게 됐다. 일정이 너무 길어서 여러 가지 걱정들이 있기는 했으나 좋은 기회인지라 큰맘 먹고 함께 했다.

마지막 빙하기말기쯤에 바이칼 호 부근에서 살았을 것이라 추정되는 민족의 시원을 찾아서, 거꾸로 중앙아시아로의 강제 회귀된 조선족들의  고통과 분노, 회한을 들여다보고 또한 나라를 잃어버린 저간의 세월을 오로지 나라를 되찾을 각오로 머나먼 시베리아에서 싸우다 죽어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선열들의 흔적을 찾아서 그렇게 길을 나섰다.

긴장이 더해지고 있는 한반도에 삶을 꾸려가는 장삼이사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를 바탕으로 현재를 분석하고 행동하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중요한 의무이지 아닐까 싶다. 이번 여행이 그런 것들을 충족했다고 보이진 않는다. 더 많은 여행의 이야기로 살들이 붙고 서로의 생각을 덜고 보태는 것들도 여행의 의미를 깊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헌시를 낭송중인 필자

‘광야’에서를 부르며, ‘선구자’를 부르며 가도 가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텡그리’신의 땅, ‘당골’의 땅, ‘단군’의 땅이 다르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농사를 통한 인류의 이동을 추측해 보기도 했다.

이제 눈을 붙이고 싶다. 아련히 망막속으로 사라져버린 벌판에 이를 드러내고 웃는 ‘브랴트’ 아주머니가 오래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의 손에 들린 ‘분홍바늘꽃’ 한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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