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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치며…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60
평택시민신문 | 승인 2016.08.24 18:22|(827호)

유 정 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가려운 데를 박박 긁으면 쾌감이 있지요.
  그러나 긁고 싶은 대로 다 긁고 나면
  온통 피투성이가 되지요.
    (중  략)
  언제나 가까운 데서, 찾고
  다른 데서 가져오려 하지 마세요.
  무엇보다 자기에게 절실해야 해요.
  쓰고 나서 많이 아파야 해요.

- 이성복 시론집,『불화하는 말들』,
   문학과 지성사, 2015, p.15.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가운데 특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가끔 ‘108배’를 활용하곤 하였다. 어떤 대상(주로 주변의 사람이거나 혹은 나 자신)을 향하여 참을 수 없는 화가 미움과 더불어 타오를 때 백 여덟 번의 절을 통하면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단단한 덩어리가 저절로 녹아내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 시간 주로 잠자리에 들기 직전 시끄러운 마음과 몸을 숙여가며 절을 하다보면 삼 일 정도, 혹은 길어도 일주일 안에 그와 같은 신기한 일은 거짓말처럼 다가오곤 하였다.

사족 같기는 해도 조금 더 덧붙이자면 다섯 차례 정도 이런 일을 겪었는데(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참을 수 없이 미워한 대상은 다섯 명 정도인 듯~) 한 번은 마음속으로 ‘108배를 하기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 아니 안할 것’이라고 작심(?)을 하였건만 그 역시도 곧 뜨거웠던 마음이 스스르 시들거리는 감정으로 수그러드는 것을 체험한 적도 있다. 이것은 일종의 종교 체험을 강조하는 말이 아니다. 하여 용서와 화해의 아름다운 승화라는 문제를 건드리지도 않는다. 다만 무엇인가 오래 혹은 깊이 공구(攻究)하고 집중하다보면 결국 무의미해지고 무화(無化)하기까지 가는 그런 변화 과정의 예를 생각해 볼 따름이다.

나에게 아버지는 무거운 숙제를 던져주었던 어떤 미묘한 감정의 텍스트(Text)였다. 물론 그 감정이라 함은 앞에서 말했던 미움이나 분노와는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다. 결단코 그렇지 않다. 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미결의 과제로 늘 내 마음의 한켠에 자리 잡고 있었던 아버지는 내 인생의 문제를 글이라는, 시라는 실타래로 풀어가게 하던 근원이었음에는 분명하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나는 아버지를 향해 절을 해왔다고 해야 한다. 그러니까 ‘가까운 데서  찾고,/다른 데서 가져오’지 않아야 하는 내 시의 대상은 ‘아버지’였다는 말이다.

연재라는 형식의 글의 특성 상 그리고 어쩌면 내가 지닌 본성의 이유로 ‘가려운 데를 박박 긁’고 ‘긁고 싶은 대로 다 긁고 나’서 ‘온통 피투성이가 되’는 일까지는 갈 수 없었다. 다만 나 이외에도 다른 여러 시인들이 공통적으로 앓았던, 미워했던, 사랑했던, 존경했던, 가여워했던 그런 아버지들의 모습을 꺼내와 함께 우리 시대 아버지의 자화상을 그려본 것은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가 연재되도록 지면을 주신 <평택 시민신문>사와 미욱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성원에 힘입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까지의 글은 ‘절실’함 속에서 배태한 것이었으나 이만큼 ‘쓰고 나서’ 보니 나는 아직 ‘많이 아픈’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앞으로 ‘가려운 데를 박박’ ‘긁고 싶은 대로 다 긁’게 될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때까지는 적어도 ‘온통 피투성이가 되’는 일이 유보된다는 뜻, 말하자면 나는 앞으로도 줄곧 아버지에 대한 ‘108배’를 이어가겠다는 맹세, 혹은 그 서약을 여기에 이렇게 적어두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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