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58

유 정 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것은 아버지의 안경에 비치던 풍경이다. 지나가는 차창처럼 때론 그곳엔 바깥 측백나무에 와서 앉던 참새들이 비치기도 했고, 때론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 비치기도 하였으며, 마주 않은 어머니의 얼굴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약간 비켜서서 그것을 바라보던 나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늘 아버지의 TV에 나올 수 없는 존재처럼 여겨졌다. 늘 한쪽 방구석에 앉아 뭔가 조몰락대며 만들거나 만화책을 보는 게 취미였던 내게 아버지의 카메라는 시선을 던져 주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임종을 얼마 앞둔 어느 날 아버지의 병실을 찾았을 때 아버지의 눈길은 나의 움직임만을 좇았다. 아버지의 눈길은 내 몸에 와서 끊임없이 달라붙었다. 삶이라는, 공부라는, 인생의 성취라는 방패로 내 모습을, 내 마음을 은근슬쩍 가리고 아버지의 마음의 반경 속으로 뛰어들기를 꺼려했던, 살아 계실 때도 마치 성묘 가듯 했던 나는 가슴 찔리는 아픔을 느끼며 슬그머니 자꾸만 그 눈길을 떼어 냈지만, 그때 아버지의 마지막 눈에는 내 안경에 어떤 풍경이 비쳤을까. 볏단에 싸인 홍어처럼 고독하게 익어 가던 아버지의 아쉬운 눈길에 설익은 아들의 안경 너머로 무엇이 비쳤을까.
 이제 나는 중년의 언덕바지에서 지나온 길을 멀리 바라보며,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나의 아내와 두 딸을 바라보며 그들의 눈엔 지금 내 안경에 무엇이 비칠까 생각해 본다. 바깥에선 지는 저녁 햇살이 홍옥 속에 갇힌 여인의 비탄처럼 수만 개의 거미 눈으로 나를 째려보고 있다.

-김재혁,「아버지의 풍경」

 

1959년 충북 증평에서 태어나 고대 독문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원에서 릴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재혁 시인은 학계에서는 교수이자 독문학자로서 그리고 문단에서는 역량 있는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다. 이 시는 ‘안경’이라는 객관 매개물로 ‘아버지’를 인식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신분으로 살면서 가장 밀접한, 아니 어쩌면 육체의 한 부분일지도 모르는 ‘안경’으로 아버지를 사유한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리 어렵지 않게 풀어내려간 본문은 굳이 상세 해석을 요하지는 않는다. ‘지나가는 차창처럼 때론 그곳엔 바깥 측백나무에 와서 앉던 참새들’과 ‘하늘에 떠가는 구름’ 그리고 ‘마주 않은 어머니의 얼굴’은 ‘안경’을 매개로 바라본, 아버지의 마음속에 보이는 ‘아버지의 풍경’ 이라고 화자는 생각하였다. 그러면서 그 ‘안경’ 속 그러니까 아버지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모습이 들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이 연출되는 이유는 아버지가 그의 안경 안에 화자인 ‘나’를 담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풍경속의 인물로 등장하기를 꺼리거나 거부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진술이 이어지고 있다.

이 한 편의 시속에는 화자인 ‘나’와 ‘아버지’ 그리고 다시 내가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는 <풍경의 주체/객체>를 아우르는 일반적 서사가 ‘안경’이라는 것으로 매개하여 흐르고 있다. 누군가는 ‘의자’를, 누군가는 ‘목소리’를 그리고 누군가는 ‘낚시’와 ‘바다’ 등 등의 수다(數多)한 풍경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아버지가 흐르고 아버지가 담긴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우리의 원적(原籍)이고 본적(本籍)이므로, 누구라도 그곳을 벗어나 생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우리 사유(思惟)의 거주지도 예외가 아니므로.
 

키워드

#N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