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호순 교수의 지역언론에서 길 찾기

장호순

순천향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사회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공동체 생활의 일부였다. 식사는 가족, 친구나 직장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혼밥’이라는 새로운 속어가 등장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혼자서 밥먹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함께 밥을 먹을 사람들이 없거나, 함께 밥을 먹을 필요성을 못느끼는 청년층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다. 가난하고 외로운 도시 젊은이들의 세태를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사회는 유사이래 가장 부유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장년층은 노후가 불안하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고 있다고 하지만, 다수 한국인들이 누리는 물질적 생활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많은 이들이 고층아파트에 거주하고, 고급 자가용을 타고 다니고, 첨단통신 기기들을 사용하며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올 여름 휴가철에는 5백만명이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피서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도심을 거니는 젊은 남녀들의 옷차림은 미국이나 유럽의 패션모델 수준에 버금갈 정도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유독 힘들게 살아가는 영역이 있다. 바로 이웃과의 관계이다. 대부분 이웃공동체 혹은 지역공동체와는 유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안락하고 풍요로운 자신의 아파트 거실을 나오는 순간부터, 혹은 자기집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긴장하고 경직된다. 자기 주변에 믿고 의지하고 살아갈 이웃들이 없다보니, 집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낯선 사람들이고 의심하고 경계해야할 사람들이다. 이웃은 편안한 친구가 아니라 낯선 이방인들이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층간소음 문제로, 주택가에서는 주차와 쓰레기 문제로 이웃 간에 살인까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사회에서 “이웃사촌”이 사라진 원인은 여러 가지이다. 우선 산업화 과정에서 농경문화의 근간인 이웃과의 교류를 기꺼이 폐기했다. 산업화된 도시가 형성되고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낯선 이웃과 살아가는 것이 불가피해졌지만, 한국인들은 교류대신 단절을 택했다. 이웃대신 “경비원 아저씨”가 생겼다. 굳이 이웃에 의지할 필요도 없고 교류할 필요도 없이, 자기의 주거공간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편리한 아파트 주거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따라서 도시에 들어선 고층아파트는 이웃과 교류할 공간을 만들지 않았다. 수백 수천명이 오밀조밀 모여 살며 서로 스치고 지나가지만 함께 모이고 교류하는 공간은 없다. 전통부락의 우물가나 느티나무 정자 같이 이웃사람들이 자연스레 어울리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아파트 단지에는 존재하지 못했다. 자기 아파트 평수 늘리기에 몰두한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용하는 ‘공용면적’은 최소한이 되길 원했다. 요즘과 같은 카페가 없던 시절, 이웃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그 이웃의 사적 공간인 거실에 쳐들어가야 했다. 이웃과 교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주거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산업화를 주도한 군사정권이 강요한 ‘반상회’도 이웃과의 교류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웃 주민들간의 자발적인 모임이 아니라 국가가 임명한 통장 혹은 반장이라는 지위를 부여받은 행정적 대표자들이 모임을 주도했다. 이웃과의 교류가 국가행정 행위가 되고, 수직적 관료주의에 포섭되면서, 한국의 도시거주자들은 이웃과의 교류를 더욱 기피하게 되었다.

이웃과의 교류가 활발하던 시절의 풍습 중 하나가 이웃과 음식 나눠먹기와 함께 먹기였다. 지금처럼 버리는 음식이 넘쳐나는 시절이 아니라, 봄이면 양식이 떨어져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어야하던 시절의 풍습이다. 요즘의 음식 풍습은 함께 먹기가 아니라 맛있게 먹기가 대세이다. TV에는 맛난 요리나 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들이 넘쳐나고, TV에 나온 식당 앞엔 손님들로 넘쳐난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TV프로그램도 있다. <한국인의 밥상>과 <삼시세끼> 같은 것들이다. 함께 만들고 함께 먹는 음식문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다.

인간에게 먹는 것은 철저히 이기적인 행동이다. 남이 나를 대신해 먹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음식을 함께 먹음으로써 이기적인 행위를 이타적인 공동체 행위로 변형시킨다. 지금보다 훨씬 어렵던 시절에도 우리의 선조들은 이웃과 음식을 함께 먹고 나누어 먹으면서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이루어왔다. ‘풍요속의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 요즘 ‘혼밥’ 세대들에게 되찾아 주어야 할 삶의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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