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56

유 정 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피랍 365일째
어머니는 두부처럼 앉아계시다
요란했던 구급차 울음소리로부터 시작된
격리,
머리맡 수북이 쌓인 약봉지 펼치듯
사계절 돌아온 홍매가 충혈된 눈을 떴다.
오늘도 어머니는 두부처럼 앉아계시다
세상 건너는 법 알려 주마는 듯
두부처럼 소리 없이 웃으며 고요하시다
반복의 틀에서 찍어지는 하루
5인실 병상 커튼과 링거 병에 둘러싸인
두부는 생각도 하예지고 있다

       ( 중   략 )

입술에 붙었던 이름 하나 둘 떼어놓으며
오늘도 두부는 파킨슨 씨와 놀고 있다
내, 어머니를 건너가고 있다.
-이영식, 「두부를 건너는 여자」부분

 

이영식 시인의 위의 시「두부를 건너는 여자」를 읽으면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와의 뗄 수 없는 인연 속의 그녀, 나의 할머니를 떠올렸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아버지가 만들었던 한 여인과의 오래고 깊은 서사는 아버지뿐 아니라 나의 유년과 그 이후의 삶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

열여섯에 결혼한 할머니는 군대 삼 년 그리고 직장을 이유로 떨어져 있던 3년을 제외한 나머지 사 년만을 오롯하게 남편과 보낸 후 스물여섯이란 젊은, 아니 어린 나이에 급작스레 과부가 되어버렸다. 사인은 급성맹장이었다. 지금의 의술이라면 가당치도 않았던 죽음이었기에 할머니는 자신의 무지와 불운을 들먹이며 내내 서러운 생애를 보냈던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개가가 아닌 수절을 선택한 젊은 과부의 생애는 그 후 척박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분첩 대신 쟁기를 뽀뿌린(?) 치마 대신 몸빼(?)를 선택한 할머니의 삶은 여자라기보다는 전사의 생이었다고 해야 한다.

이후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가운데 하나는 나 대신 집 전화를 받아주던 할머니의 목소리를  혼동해서 친구들은 “아버지가 전화받아주셨어”라고 하는 일이 많았던 것 등이다. 거칠게 그리고 엄격하게 생을 운영할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 슬하의 아버지는 과묵 그 자체의 효자였다. ‘아버지의 부재’라는 상처 혹은 결핍을 안고 나름의 방식으로 인생을 경영했을 것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왜 자식을 다섯이나 낳아서 모두의 요구를 충족 못해주는 무능함을 보이느냐고 퍼부었던 나의 십대가 지금도 생각할수록 부끄럽다. 그 역시도 슬하 두 자식밖에 볼 수 없어 외로워했던 할머니에 대한 효의 한 방식이었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 할머니는 ‘파킨슨병’도 앓지 않고 병원에 입원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이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시인이 건져온 ‘두부’이미지, 나 ‘두부를 건너는 여자’의 이미지와는 다소 다른 범위에 있다. 젊은 날 억척 같이 일하며 자식을 위해 살았으나 별 지병 없이 지내시다가, 먼저 보낸 남편 대신 극진한 효자로 살던 아들의 품에서 수월하게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셨다. 이 시를 보면서 나는 다만 극진한 효자의 태도를 들여다 볼 뿐이다. 슬하의 자녀로 생을 부여받았으나 그리하여 모든 자식은 부모의 돌봄 특히 엄마의 보살핌과 걱정으로 성장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돌봄의 주체로 거듭난다.

의식의 저편으로 이끌려가는 할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아버지는 죽 한 수저 입 안에 넣어주는 것으로 자식으로서의 최후 부역을 마쳤다. 어찌 그리 의연하고도 거룩하셨던지! 삼일장을 치르는 내내 침착하게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는 영구차에 주검을 싣고 지내는 마지막 제례에서 그만 일어나지 못하고 끝내 오열하던 아버지! 아무리 여러 차례 기억을 꺼내어 들여다봐도 그 아름다운, 진실의 감도는 ‘하예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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