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54

유 정 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고작 칠일 울려고
땅 속에서 칠년을 견딘다고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매미의 땅속 삶을
사람 눈으로
어둡게만 보지 말자

고작 칠십년을 살려고
우리는
없던 우리를 얼마나 살아왔던가

환한 땅 속이여
환한 없음이여

긴긴 없었음의 있음 앞에
있음이라는 이 작은 파편이여

-함민복,「매미」

 

매미가 여름 한철 칠일 정도의 시간을 울다가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 짧은 순간을 위해 깊고 어두운 땅 속에서 칠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딘다는 정보는 이제 새롭지 않다. 특별한 매미의 일생을 우리는 여러 가지 삶의 알레고리로 사용해오고 있었다. 빛나는 순간은 잠깐이지만 그것을 위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이 마련되어야 하는 가를 교훈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빈번한 예일 것이다. 말하자면 땅 바깥의 매미는 결실과 완성의 환희를 의미하지만 땅 속의 칠 년은 불투명한 어둠의 고난으로 상징되면서 완성된 순간을 위한 필요 조건으로 보았다. 우리가 특별히 매미의 알레고리를 주목했던 것은 매미의 칠 년을 매미만의 독특한 생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함민복 시인은 미물로서의 매미의 생태가 단순히 그에 한정되지 않고 있음을 밝혀 쓰고 있다. ‘매미의 땅속 삶을/사람 눈으로/어둡게만 보지 말자’ 라는 구절로서 ‘땅속 삶’이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듯 그리 어둡지 않은 시간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삶이라는 것도 매미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말하기도 한다. 우주의 시간으로 본다면 인간이 누리는 ‘칠십년’은 먼지와 같은 시간이다. 그러니까 매미가 ‘칠일’을 위해 쏟는 ‘칠년’이라는 시간이 인간의 시간에 대유될 때 ‘칠십년’의 짧은 삶을 배태한 무장한 땅속 시간, 적어도 칠백년에 가까운 어떤 시간의 존재를 환기하게 된다. ‘고작 칠십년을 살려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어둠을 소비하며 절망과 싸웠는지를 질문하게 된다.

그러나 ‘칠백년’이라는 인간의 시간이든, ‘칠일’이라는 매미의 시간이든 그것이 무의미한 ‘없음’의 시간이 절대 아니라는 것, 그리하여 ‘없음’은 ‘있음’의 시간으로, ‘땅속’은 어둡지 않은 환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아버지의 시간을 명상할 수 있다. 우리들의 빛나는 ‘칠일’간의 울음을 위해 ‘땅속’에서 ‘칠년’을 웅크려 있었을 아버지의 시간들, 만약 ‘칠십년’이라면 그 웅크림은 ‘칠백년’에 가까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다분히 잉여의 시간으로 보이는 그것은 그러나 ‘없음’이 아니라 ‘없었음의 있음’이라는 빛나는 현존으로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있음의 작은 파편’은 ‘없었음의 있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시간들이었다. ‘환한 땅 속’ ‘환한 없음’ 속에 있었던 아버지의 시간들! 그러므로 우리들 아버지는 끝내 ‘환한 시간’이라고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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