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53

유 정 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대관령을 넘어 배추작업 하러 나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여자와 살고 있던 아버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연탄불이 꺼진 방안에서 울다 지친 여동생들은 찢어진 교과서 조각처럼 흩어져 잠이 들었다. 13살 나는 칭얼대는 남동생을 등에 업고 발걸음 뚝뚝 끊어지는 골목길을 서성거렸다. 밤하늘은 흐리고 간간이 초겨울을 몰고 오는 바람이 무거웠다. 집집마다 잠긴 대문 안 쪽에서 개들이 나를 향해 짖기 시작했다. 속수무책 귓불이 따갑게 얼어갔다. 하나 둘 등불이 꺼지고 통금 소리 울려도 엄마도 아버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숨을 곳을 찾아 눈을 번뜩이다, 고양이는 명치끝이 붉게 타들어 가면 검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내 눈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 「도둑고양이 되기」

 

사사로이 시인들을 만나거나 간간히 그들의 시를 찾아 읽으면 제일 먼저 올라오는 궁금증이 있다. 그들은 어떤 계기로 시를 쓰게 되었을까? 왜 시인의 운명으로 살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시인들은 대개 직설화법과 거리를 두면서 나름의 비의를 행간마다에 은밀히 숨겨놓는다. 그 숨겨진 의미를 한 꺼풀씩 벗겨내다 보면 그 안에 펼쳐지는 풍경을 도구삼아 그들만의 다채로운 생의 서사를 만날 수 있다. 오해의 소지가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시 안에 등장하는 시어의 숨은 뜻을 암호를 푸는 마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상징과 비유 등으로 보이지 않게 꽁꽁 숨겨두었으나 누군가에게는 비밀스럽게 던지고 싶은 그들만의 숨겨진 이야기, 그 핵이 하나씩 형체를 드러내게 마련이다. 시를 관통하는 이미지나 자주 제시되는 시공간, 그리고 개인상징화한 시어 등은 그러므로 시인의 내면을 따고 들어가는 훌륭한 열쇠가 된다. 위의 작품을 읽으면 그 최초의 궁금증이 한 번에 풀리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는 시를 쓴 시인과 시의 화자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명제를 위반하는 데서 출발한다.

“다른 여자와 살고 있던 아버지”를 대신하여 “대관령을 넘어 배추 작업하러 나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는다. “연탄불이 꺼진 방안에서 울다 지친” 여동생들을 뒤로 한 “13살 나는 칭얼대는 남동생을 등에 업고” 겨울바람 사나운 골목길을 서성이고 있다. 어린 소녀가 처한 상황으로는 깊은 안타까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는 시의 화자, 곧 시인의 유년이 가난과 어둠으로 직조된 절망의 밑그림 속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가 ‘절망을 딛고 핀 꽃’이라고 보고 시인을 ‘절망을 꽃으로 피우는 자’라고 한다면 최소한 시인 조숙향의 화자는 ‘유년의 가난과 어둠을 시라는 꽃으로 밀어올린 자아’라고 할 수 있겠다.

13살 어린 소녀가 처한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이었을까? 다만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무기력함뿐이리라. 버거운 멍에를 혼자 지고 찬바람 속에 서 있는 어린 화자의 처연한 모습이 추위에 돋아났을 푸른 소름만큼이나 선명하다. 인간에게 맞닥뜨려지는 고통과 그에 대한 반응은 매우 주관적이다. 아무리 큰 고통에도 상처를 입지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매우 미세한 자극에도 깊은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기다림은 상처를 견디는 힘이다. 가까이 있는 고통을 잠시 유예시키기도 하고 잊게도 한다. 춥고 어두운 실존을 몸으로 견디면서 기다림을 연습하던 시의 화자는 “도둑고양이”처럼 “어둠속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자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응시와 사유의 힘은 곧 깨어있는 시의 정신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그로써 시의 성취를 가능하게 하는 초기조건이 되었으리라 짐작해 본다.

시는 절망의 한 형식이다. 시의 발생 근거는 생의 슬픔과 아픔에 뿌리를 둔다. 시가 충일과 성취에서 오는 것이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시는 결핍과 상처에서 돋아 오른다. 암울한 현실 조건 속에서 어린 소녀가 맞은 암담함, 그 가난의 원체험은 시의 조도를 흐리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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