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52

유 정 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나는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었다
땡감이 아니면 물러터진 홍시감이다

때문에 때문에 뿐이었던 아버지가
수도 없이 못 박혔을 십자가 형틀을
부모 노릇 하느라 짚어지느니

세상 어머니들이 성모님이신데
세상 아버지들도 순교성인 왜 아니랴
십자기로 얽어진 가정 수도원에서.

-유안진,「아버지」

 

이 시를 읽으면서 새삼스레 ‘가정(家庭)’이라는 사전의미를 찾아보게 되었다. 가정은 ‘한 가족이 생활하는 집’(민중서림 국어사전)이나 ‘가까운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공동체’(네이버 국어사전)와 같은 의미로 정의되는 개념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사회가 ‘가정’이라고 배웠던 아련한 기억도 있다. 자의에 따른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그곳에서 주어진 최초의 운명에 묶여 인생이라는 거대한 파노라마를 시작하게 된다.
대체로 혈연관계나 혹은 혈연을 넘어서는 친연관계로 묶여 있는 것이 가정이다. 우리들의 의식 속에서 ‘가정’은 물질이나 황금의 가치가 지배하지 않는 순연한 공동체라는 것이 배면에 깔려 있다. 그러다보니 가정 바깥에서는 마땅히 자본의 가치로 환산되는 시간 혹은 노동 등이 가족이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알게 모르게 희생을 강요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공동체에서 무의식적인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은 어른들, 부모들이다. 알다시피 그들은 가족을 위한 희생을, 조건 없는 사랑을 버거워하지 않는다. 돈으로 환산하지 않는다. 아니, 적어도 내가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까지는 그러했다고 믿었다.

‘나는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었’다고 ‘땡감이 아니면 물러터진 홍시감’이었다고 말하는 화자의 의도를 오래 궁구해보니,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돌올하게 솟은 화자, ‘나’의 위치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너무 어린’ ‘나’는 ‘아버지’를 향하여 ‘때문에 때문에’를 쏟아내는 자아이며, ‘너무 늙’은 ‘나’는 ‘부모 노릇’하는 자아로 보인다.

어려서는 원망도 많았다. 이러저러 부족하다고 느끼는 물리적 조건에 대한 원망들, 스스로 역량이 부족해서 이루지 못하는 성과를 주어진 환경을 탓하며 분노했던 일들, 생각해 보면 셀 수도 없이 많다. 그런 이유로 말없이 그리고 ‘수도 없이 못 박혔을 십자가 형틀’의 ‘아버지’를 오래 생각해 보는 것이다.

‘홍시’같은 부모가 되어 보니 그 모든 일들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 고통을 견디는 그 분들의 희생이 순교에 버금간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물론 나 자신은 아직도 ‘홍시’ 같은 어른이 될 능력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가정이라는 따뜻한 온기(溫氣)는 ‘성모님’ 같은 ‘세상 어머니들’과 ‘순교성인’ 같은 ‘세상 아버지들’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가정은 사랑의 성지이지만 그들의 희생과 순교가 아니었다면 이루어 낼 수 없는 ‘십자가로 얽어진’ ‘수도원(修道院)’, 곧 도를 닦는 곳이다. 문단의 어른이 얻은 깨달음을 덩달아 명상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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