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48

유정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장유정 시인은 1961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하였고 단국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떠도는 지붕」이라는 작품으로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였으며, 2015년 아르코 문학 창작기금을 받은 바 있다. 위의 시는 최근 발간한 첫 시집의 표제작「그늘이 말을 걸다」에서 전문을 인용하였다.

이 년 전쯤 어느 모임에서 장유정 시인과 만난 적이 있다. 그보다 앞서 이 시인에게 짧은 산문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글이 보여준 완성미 덕분에 매우 반가워했던 기억이 있다. 시집을 펼쳐 읽다가 이 시인이 평택 출신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반가웠는데 일전에 내가 네팔시인의 번역시집을 출간했던 <문학의 숲>이라는 출판되었다는 사실에서 더욱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이 터무니없는, 근거 없는 반가움은 아마도 많은 부분 우리 둘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유사성에 기인하였을 것이다. 같은 본향의 카테고리에 묶인, 같은 성(性)을 공유하는, 같은 언어군에 종속되었다는 운명의 친연성이 마음의 바닥에 자리했을 것이다.

이 시의 구도는 ‘아버지=새(제비)=목수’와의 객관 거리를 유지한 화자의 발화 중심으로 되어 있다. ‘오랫동안 그늘을 접고 다니’는 ‘아버지’, ‘남녘에서 서쪽의 창을 다는 목수’ ‘늘 곯아 있’는 ‘탁란’을 마주해야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전면에 펼쳐진다. 화자의 아버지는 ‘계절’에 따라 유랑하는 ‘목수’의 운명을 살았던 것일까? 그런 주어진 운명에 따라 살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생은 ‘그늘이 말을 거’는 생이었다고 화자는 말한다.

새는 광활한 허공을 비상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런 거칠 것 없는 자유가 땅에 묶인 인간에게는 부러움을 사는 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시에 등장하는 ‘새(제비)=아버지’의 운명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둥지를 박차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 둥지로 돌아와야 새끼를 돌보아야 하는 ‘새=제비’의 운명이 그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장유정 시인과 나, 둘만이 공유하는 아버지에 대한 인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고공을 활강하는 모든 새는 예외 없이 둥지를 염두(念頭)에 둔다. 설혹 너무 멀리 날다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더러 돌아오는 길을 잃어 헤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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