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가능성도 우리안에 있다”

산업화·민주화 과정논의 이외에 못 챙긴 일이 너무 많아
닫힌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참여와 실천하는 책임 있어야

김종기

평택샬롬나비경영이사

(주)중앙이엔씨 대표

1. 몸서리가 쳐진다. 두터운 옷을 입고도 견디기 힘든 혹한의 겨울에 그것도 차디찬  알몸으로 독한 락스를 뒤집어 쓴 채 차디찬 화장실에서 배를 굶주리며 어린이는 그렇게 얼어 죽었다. 재롱을 부리고 넘치는 사랑을 받아도 부족할 나이. 맛있는 것을 사달라고 한없이 투정을 부려도 부족할 나이 여섯. 수일도 아니고, 수년을 학대당하고 굶기며 추위에 떨면서 원영이는 그렇게 죽어갔다. 어떻게 사람이 그리도 잔인할 수 있는가! 그것도 부모의 자격으로. 그래도 봄은 오는 건가? 알 수 없는 고통이 저려온다. 우리 사회가 이런 자들을 향해 돌을 들지 않는다면 어찌 하늘이 있다 하겠는가?
2. 이것은 우리사회가 병들었다는 뒤틀림의 소리이다. 우리 사회가 단절되고 닫힌 것을 의미한다. 피가 돌지 않아 몸의 세포들이 괴사해 가는 것처럼 우리의 공동체가 병들어 썩어가고 있다는 소리이다. 
닫혔다는 것은 출구가 없는 삶이고, 소통과 구원이 단절된 절망의 삶이다. 망망한 대해에 표류하는 난파선. 그 위에 살아남은 자들의 두려움과 절망의 삶이다. 닫힐 때 사람들은 두렵고 절망한다. 극도로 민감해지고 각박해지고 동료가 적으로 변모하는 증오의 감정이 증폭된다. 무차별적 살인과 자살들이 그것이다.
3. 우리나라의 자살율이 세계 1위이다. 1시간에 1.5명 하루 38명의 사람들이 극도의 절망감속에 자기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다. 단절되고 닫힌사회의 징후이다.
그런데 의붓 부모는 그렇더라도 친부모가 어린 자식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우리 사회의 충격적인 현상은 무엇인가? 이의 속성은 살인이 아니고 자살임을 유념해야 한다. 자식을 부모와 일체화하고 닫힌 우리의 독특한 가족의식의 발현이다. 그들은 남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향해 총을 쏜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이것이 우리사회에서 더 이상 이슈도 아니요,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일이라는 것이다. 공동체라는 말도 이제는 아련한 말이다.
그들의 삶이 닫히고 벼랑 끝에 내몰린 것이다. 그러고 우리가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이들 개인에게서만 찾으려 할때 이들의 삶은 더욱 기댈 곳이 없다. 사회와 개인들이 감당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힘들어 졌다. 이제는 나라가 그들에게 의지가 되어 주어야 한다.
5. 그리고 이것은 명백히 국가와 정책의 실패이다. 국가가 시대적 변화와 새로운 과제 대응에 실패한 것이다. 국가의 역할과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되물을 때다. 그리고 이러한 실패의 핵심에는 경제적 구조의 극심한 불균형과 양극화가 있다. 그 속에 내몰린 국민들의 각박한 삶이 있다. 전체 기업 중 0.8%를 차지하는 4310개 대기업이 차지하는 매출비중이 63.6%이고, 99.2%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매출이 36.4% 이다. 2015년 통계청의 자료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기업의 고용비중은 13%대로 미국의 대기업 고용률이 57%의 수준임을 감안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OECD국가중 최하위이다. 2015년 OECD자료이다
6. 동남아시아도 아프리카도 아닌 명색이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경악스런 수치와 구조는 미스터리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명백하다.
이는 고용의 질과 소득의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경제의 구조적 불균형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다. 그간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성장과 수익이 더 이상 국민경제의 성장, 젊은이들의 질 높은 고용, 그리고 서민들의 소득 증대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소득이 감소하고 있다. 대기업의 부가 서민에게 흘러내린다는 낙수효과는 이제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상위 10%가 전체 부의 45%를 차지하는 나라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빈부차가 OECD국가 중 1위, 아시아국가중에서도 1위이다. 이의 당연한 귀결이다. 우리가 무시했던 필리핀이나 맥시코를 앞질렀다. 멕시코도 우리와 경제규모가 비슷한 나라이다. 우리의 상황인식이 안일함을 경계해야 한다.       
지난 1990년 이후 20년간 국가 GDP중 기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이 150% 증가한 반면 가계소득은 그 비중이 오히려 15% 줄었다. OECD국가들 중 기업소득의 비중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가계소득이 가장 빠르게 축소된 국가가 되었다. 그럼 이렇게 소득이 줄어가는데 가계들은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국제금융 위기 이후 OECD의 모든 국가의 가계부채가 축소되었음에도 유일하게 그리고 급속하게 가계부채가 증가한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빚을 내어서 살아간 것이다. 이제 가계대출 1000조의 시대이다.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부채의 비중이 160% 수준이다. 2008년 미국이 130%수준에서 서브프라임이 터졌다. 우리 국민들의 경제적 여력이 극도로 좁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성장과 구조의 당연한 귀결은 양극화이다.정부와 대기업만 부자이지만 국민은 가난한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의 삶이 이미 한계점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구조는 궁극적으로 구매여력과 내수기반을 약화시키고, 이것이 만성적 경제불황의 원인이 된다. 만약 국가내부에 기득권을 보장하는 수탈적 착취구조가 고착되고, 불공정과 불균형이 심화되고 확대된다면 이는 공멸로 가는 과정이다. 그럼에도 국가내부에 기득권을 보장하고 이러한 수탈적 구조를 항구화하려는 불온한 적색세력들이 존재한다는 느낌이다. 공신으로 시작해서 국정을 장악하고 농락하는 세도세력의 수순을 밝는 역사드라마의 단골 테마가 오버랩 된다.
7. 사회가 각박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고 국가가 믿음을 주지 못할 때 젊은이들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게 된다. 이것은 닫힌 사회의 대표적인 지표들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1.2%로 세계 최하위를 기록한지 오래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가 그간의 자랑스러운 성장과 발전이 정체되고 침체되는 느낌이다. GDP의 답보, 전자 화학 조선 건설 등 대기업 주력상품이 후퇴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밖에 나가 싸워야할 대기업이 더 이상 도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존을 위해 서민들의 경제기반을 잠식하고, 의료와 공공시설 등 국가재정이 항구적으로 투입되는 공공인프라의 영역을 장악하려 한다. 내수경제의 진작과 일자리를 만든다는 미명하에 내부로 파고드는 것이다.
이미 중소기업과의 관계는 어떤 경우에도 대기업의 생존과 이익을 보존시키는 수탈적 구조로  고착화됐다. 그리고 우리사회에 이런 기득권의 카르텔이 더욱 광범하게 공고화되는 느낌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육하고 조정하는 매트릭스의 사회이다. 그 누구도 옴짝달싹 못하고 조종되는 닫친 사회이다. 이러한 닫힌사회를 지향하는 어둠의 세력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명백히 우리의 적이다.
8. 어느 때보다 국가의 역할이 비상한 시기이다. 국가가 기로에 섰다. 그러나 녹녹치 않다.
훨씬 복잡하고 다층화 된 사회구조, 정책의 복잡성과 양가성, 기득권 막강한 장악력. 이미 국민들이 국정의 흐름을 읽고 정책의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서민이 의미도 모른 채 재벌정책을 옹호하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진영에 갇힌 우리사회 진영의 논리가 상황을 어렵게 한다. 공공의 이익이  진영의 이익으로 그리고 토론과  통합이 논쟁과 대립으로 대치된 지 오래이다. 과거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방식이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더 이상 유일하고도 유효한 방식일 수 없음에도 우리의 현실과 미래를 옥죄고 있다. 국가지도자들 마저 국민의 통합을 말하지 않고 진영의 논리를 노골화한다. 지성과 지도자가 탐욕의 덫에 갇힌 것이다.
또한, 진취 패기 그리고 사회정의를 잃어버린 우리의 젊은이들과 노인층 인구의 과도한 보수화와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가 미래로 향하는 우리의 출구를 좁힌다. 그리고 우리가 확립한 민주화와 법치의 안정성이 기득권이 번영하는 비옥한 기반임은 아이러니이고 비극이다. 그들은 법을 활용하는 엄청난 노하우와 인적 물적 자원을 확보하고 지배 인프라를 공고화하고 있다. 유전무죄를 넘어 공권력을 무력화하고 불의의 합법적 지배를 공고화하고 있다.
이런 우리사회는 일본의 표현을 빌리면 ‘폐쇄사회’, 사람으로 비유하면 ‘중증환자’라는 느낌이다. 개인의 몸이라면 이미 심각한 고통을 느끼며 죽음을 예견할 것이다. 사람의 몸과 비슷한 듯 다른 것이 사회이고 국가인가 보다. 분명 다함께 죽어가는 것임에도 이해가 갈리고 이의 심각성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미 그 심각성을 감지하고, 쩍하고 갈라지는 세상에서 나만은 이쪽에 서야한다는 영리한 생존본능에 충실한지 모른다. 각자도생의 영리한 행동들이 우리사회의 침몰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정말 국가와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이다
9.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래도 희망은 정치이고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좋은 지도자를 많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지도자의 위대한 안목과 의지가 불모의 대한민국을 산업화로 이끈 것처럼, 그리고 지도자의 위대한 신념과 투쟁이 억압과 독재의 대한민국을 민주화로 이끈 것처럼 그래도 희망은 지도자이고 리더십이다.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저력 있는 국민이다. 우리는 가장 단기에 IMF경제위기를 극복한 나라이고, 유일하게 중진국 함정을 벗어난 국민이다. 여기서 무너질 국민들이 아니다.
10. 또다시 선거의 철이 지나가고 있다. 국민의 대표선수 국가의 지도자들을 뽑는 얼마나 중요한 시즌인가. 우리는 그간 무엇에 열광했는가? 보여지는 당과 후보에 자신을 일체화하며 열광할 수 있다. 그들의 성패에 함께 기뻐하고 함께 낙담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 냉정히 생각해보자. 승리하고 출세한 자는 당신이 아니라 그들뿐 임을. 져도 지지만 이겨도 지는 이상한 게임을 했다는 것을. 나의 투표가 불공정과 불균형을 고착화하려는 보이지 않는 세력들의 불온한 기획과 시도에 맞서지 못했다면 나는 진 것이다.
나의 투표가 저들을 두렵게 하지 않고 조용히 미소 짓게 만들었다면 나는 진 것이다. 나는 저들의 귀여운 호갱인 것이다. 나의 투표행위가 충분이 냉정하고 충분히 계산적이지 못했다면 나는 진 것이다. 몇 번이면 무조건 찍는 당신은 저들의 영원한 호갱이다.
혐오든 무관심이든 투표를 포기했다면 나는 싸우지 않고 백기를 든 것이다. 저들이 가장 좋아하는 호갱이다. 불의와 불공정과 불균형이 공고화된 닫힌사회를 앞당겨 줄 것이다.         
11.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참여하지 않는 자의 밥은 없다. “권리위에 잠자지 말라. 잠자는 자들의 권리위에 불의는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것을” 「권리를 위한 투쟁」의 저자 예링의 말이다. 우리가 꿈꾸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모든 국민들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는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사람을 바꾸고 좋은 지도자들을 뽑는 우리들의 깨어 있는 실천이 없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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