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나는 여섯 살, 언니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지 동대문운동장 앞 공터엔 손님을 기다리는 삼륜차들이 모범택시처럼 죽 늘어서 있었지 언니와 나는 아이스케키 하나씩 들고 먼발치에 서서 세어 보곤 했지 아, 아버지 차가 이제 세 번째야 한참 고무줄놀이를 하다가 또 가 보곤 했지 야아, 아버지 차가 안 보인다! 언니처럼 덩달아 나도 손뼉을 치곤 했지 차가 오래 안 보이던 날 저녁이면 센베이나 꿀참외를 사 들고 오시던 아버지


 

   어제도
   오늘도
   아버지 차는 보이지 않는다
   오래오래
   어느 먼 별로 일 나가신 건가
   다시 돌아와 맨 꼴찌로 줄 서실
   오십 년 전 그 공터도 이젠 보이지 않는데
   언젠가 나 깜빡 잠든 사이
   불쑥
   금성캬라멜을 사 들고 오시려는지

-정채원,「금성캬라멜」

 

 이 시에는 ‘여섯 살’ 어린 화자가 ‘초등학교 4학년’ 언니와 함께 등장한다. ‘오십 년’ 전 어린 여자 아이의 눈에 비친 ‘아버지’와 저간의 풍경들 그리고 현재의 관점에서 그리는 ‘아버지’, 이렇게 두 개의 틀로 이루어진 흥미로운 시이다.

 두 어린 소녀는 ‘삼륜차’영업으로 생업을 이어가는 아버지를 가졌다. 그들은 ‘동대문운동장 앞 공터’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삼륜차들이 모범택시처럼 죽 늘어서 있’는 ‘먼발치에 서서’ 아버지의 노동에 따라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댓가를 셈할 줄 알았다. 차례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차가 손님의 물건을 싣고 어딘가에 다녀오게 되면 ‘센베이나 꿀참외를’ 먹을 수 있었다고 ‘손뼉’을 쳤던 것이다. ‘아버지’의 생업의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소녀들은 오래도록 ‘아버지 차가 안 보인’ 후에 얻을 수 있는 맛있는 먹거리와의 함수만을 생각한다. 사실 가벼워 보이는, 이 시가 보여주는 그림 속에는 흐린 착취의 구도가 자리하고 있다. 생업을 위해 줄을 선 아버지의 고뇌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들은 ‘아이스케키 하나씩 물’고 있거나, ‘고무줄놀이’로 시간을 보내거나 ‘손뼉을 치’는 일에만 역할이 주어져 있다.

 자식은 그저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의 노동을 착취한다.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 자식들에게 착취당한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해버리면 가족이라는, 혈육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인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너무 냉소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부모라고 해서, ‘아버지’라는 이유로 해서 대가없이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이 시는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아버지가 ‘언젠가 나 깜빡 잠든 사이/불쑥/금성캬라멜을 사들고 오’실 지도 모른다고 천연덕스럽게 마무리하고 있는 이 시의 마지막이 그런 점을 더욱 밝게 환기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금성캬라멜’을 기다리는 ‘오십 년’ 후의 화자는 당연하다고 지금까지 여겨왔던 ‘아버지’의 노동과 희생을 고맙게, 그리고 가슴 아프게 회억하는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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