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43

유정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바다는 섬을 낳아 제 곁에 두고

파도와 바람에 맡겨 키우네

-김명수,「사랑」

 

두 개의 행으로 이루어진 짧은 시가 언뜻 눈에 들어왔다. 1995년에 발간된 시집이었는데 그 즈음 일독한 후에 책꽂이에 꽂아 두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오래된 시집에서 이 시를 다시 찾아 읽게 되었다. ‘바다’와 ‘섬’이라는 객관 상관물을 이용하여 ‘사랑’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에 의하면 ‘섬’은 ‘바다’가 낳은 존재로 그(바다)에 의해 양육되어지되, ‘바다’가 주체가 되어 ‘섬’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파도’와 ‘바람’에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강조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모름지기 시인은 ‘맡겨 키’운다는 것에 진한 방점을 찍었을 것이다.

세상에는 ‘사랑’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존재한다. 사람들의 수만큼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가능하며 그리하여 흔한 것이 그것 아니겠는가? 사랑은 온유하고 감미로우나 그러나 그 안에는 맹독이 존재하기도 한다.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아주 많은 양의 통증과 고통, 깊은 좌절을 생산해 내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간섭하고 구속하며 그리하여 또 다른 상처를 주고 마는 것이다. 하여 미국의 유명한 작가 스티븐 킹은 ‘사랑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으며, 그 이빨에 물린 상처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아닐까?

이 시를 다시 읽으면서 나는 ‘제 곁에’ 있는 ‘섬’에 대하여 ‘파도와 바람에 맡겨 키우’는 ‘바다’의 태도가 우리네 아버지들의 ‘사랑’과 무척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섬’에게 ‘파도와 바람’은 무엇인가? ‘섬’이라는 존재기반을 위협할 수 있는 위험한 요소가 아닐까? 그런 상황에서도 ‘섬’을 낳고 보호할 의무가 있는 ‘바다’는 초연하다. 그런 상황에도 그저 ‘맡겨’ 키운다는 의식으로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아버지와 비교해보면 대체로 엄마들은 애면글면한다. 가까운 거리에서 손수 챙기고 보살피는 엄마 역할의 속성상 그럴 수밖에 없는 이치다. 그러한 애면글면한 ‘사랑’이 그 농도가 진하지 않거나 수위가 낮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다만 태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버지들의 사랑은 다소 원거리에서 조금 여유 있는 시야를 확보한다.

근거리에 있는 엄마의 ‘사랑’으로 나는 성장해왔다. 때로 아버지의 존재를 잊기도 했으며 아버지의 ‘사랑’은 없었다고 믿기도 했다. ‘바다’같이 큰 그림으로 존재한 아버지를 찾아낸 것은 이 시를 읽으며 얻게 된 내 나름의 큰 소득이었다.

아버지라는 ‘바다’는 그 어떤 ‘파도와 바람’, ‘폭풍우가 몰려오는 것을 지켜보아도 동요하지 않을 것’(셰익스피어)이다. 힘센 ‘사랑’의 힘은 ‘곁에 두고’ ‘맡겨 키우’는 여여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