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에세이 시와 함께 읽는 아버지 이야기 41

유정이

시인·문학박사

경희대 겸임교수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이문재,「농담」

이 시의 첫 연은 이미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공익광고 혹은 어느 기업의 광고 문안으로 접한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멋진 여행지를 발견했을 때 혹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을 때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마주 대했을 때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나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떠오르는 얼굴’은 누구일까?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는 대답은 ‘자식’이 아닐까? 특히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고등교육은 받았을지언정 나는 좋은 부모가 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얼떨결에 부모가 되었던 것 같다. 범위를 조금 넓혀서 요즘의 ‘우리’라고 해도 무리는 없으리라. 주변에서 우연히 접하거나 더러 적극적인 정보를 활용해서 수유부터 이유, 보행과 학습에 걸친 긴 육아의 과정을 나(우리)는 허겁지겁 이수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닥 까다로운 사전준비 없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전 세대, 즉 우리들 부모들 덕에 알게 모르게 체득된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된 학설에 의하면 인류가 세대를 거듭 존속시키기 위한 우선적이고 본능적인 원칙이 바로 ‘내리사랑’이라는 것이다. 즉, 본능적으로 우리는 자식을 향한다는 말이다. 자식으로 향하는 마음이 절대적이지 않으면 결코 인류는 융성한 역사를 이루어 나갈 수 없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리라.

 오십 넘어 아이들은 손을 떠나고 등 뒤에 노구의 부모를 둔 상황에 처하고 보니 이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명확한 줄기를 읽게 된다. 이즈음이 되어서야 등 뒤에 서 있는 늙고 초라한 부모가 자식인 ‘나’를 먹이고 입히기 위해 얼마나 절대적으로, 얼마나 본능적으로 투신했는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자식을 낳고 키워보아야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퍽이나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 명제가 얼마나 정확하고 절대적인 진리인지 알게 되는 순간인 것 같다. 이렇게나 멀리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종은’ 얼마나 많이 아팠을 지를 아프게 인지하는 순간이다.

다행히 내겐 생존해 계시는 부모가 있으니 ‘그윽한 풍경’ 앞에 모시고 가거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을 사드릴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이만큼의 행복도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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