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회<물꼬있는 샘터 교회 담임목사·사회복지사>

폭력으로 평화를 만들 수 없다는 말 되새기고
용서받고 용서해주는 방법만이 평화추구의 길


미국의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2차 세계대전 때 유럽연합군의 총사령관을 지냈으며 그가 미국대통령 재임시 이렇게 말하였다.

“모든 전쟁 무기는 결론적으로 굶주리고 먹지 못한 사람들. 입지 못하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에게서 도둑질 한 물건이다.

그것은 돈 만 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땀, 과학자의 재능, 어린이들의 희망을 소비하고 있다. 이것은 결코 생명의 길이 아니며 전쟁의 구름아래 인간성은 수난 당하고 있다.”라고 역설하였다.

그런 그가 대통령을 지낸 현재의 미국은 경제대국으로서 자국민을 굶주리지는 않지만 세계 최대 무기 수출국이요 전쟁이라는 특수 수요가 항상 있어 군수품 공장이 호기를 맞고 있고 또한 계속적인 첨단 무기를 연구개발에 앞장서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필자는 미국의 9·11 사태이후 팍스-아메리카나(Pax-Americana: 미국의 지배에 의한 평화) 논리가 과거 히틀러의 나치주의(Nazism), 일본의 군국주의(Militarism)를 연상하며 부시의 ‘악의 축’ 발언으로 동·서, 남·북을 분단시킨 냉전시대의 사고로서 ‘내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흑백논리와 ‘대화는 원하면서 협상은 없다’라는 모순된 논리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자국의 인권과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약소국의 인권과 자존심은 개의치 않고, 테러의 보복으로 ‘쥐 몇 마리 잡기 위해 장독대를 모두 깨뜨리거나 초가삼간을 태우려는 위험한 사고를 가지고 있고 또한 과거에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불평등한 여러 조건을 강요하고 심지어는 유엔(U·N)에게까지 힘의 논리에 의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유엔기(旗)의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 가지가 세계 지도의 양쪽을 감싸고 있는 모습을 가시나무와 독수리의 모습으로 바꾸지나 않을까? 하는 망상까지 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이러한 미국의 부시(Bush)대통령에게 “광폭한 독수리는 비둘기를 낚지 못한다.”(Nor do fierce eagle produce the peaceful dove : 폭력으로 평화를 만들 수 없다)라고 말하고, 다음과 같이 인도(印度)의 비폭력, 무저항주의로 널리 알려진 간디(Dandhi)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어느 힌두교인이 미움과 증오심으로 가득 찬 얼굴로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힌두교인 : 나는 모슬렘교도에게 살해된 나의 아들에 대한 복수를 위해 모슬렘교를 믿는 어린애를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간디 : 우선 길가 어느 곳이든지 부모 없는 고아를 찾아서 당신 아들로 생각하고 잘 키우시지요. 그런데 그 아이는 반드시 모슬렘교인으로 키워야 합니다.

힌두교인 : (이 말을 듣고 한동안 괴로워하다가 흐느끼며) 스승님의 말씀대로 행하겠습니다.

지구상의 발을 딛고 사는 국가, 사회, 개인 모두가 진정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받고, 용서해주는 방법만이 참된 평화를 도둑질 맞지 않는다.
또한 우리도 평화를 도둑질한 이데올로기(Ideology)의 옷을 완전히 벗고 피해의식 상처가 치유되어 평화를 도둑질 당한 과거의 이데올로기의 흑백논리 망상에서 벗어나 평화를 배우기 위해 사회의 개혁과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옛날에는 탐관오리가 득세하면 선비는 초야에 묻혀 살았다. 그러나 필자는 선비는 아니지만 단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심으로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한사람으로서 불의한 일을 정당화하거나 비호하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나라와 민족 그리고 이웃의 평화를 도둑질 당하지 않고 지키기 위하여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성경에 기록한데로 이런 기도를 하고 싶다.

“주여! 이 땅에 칼을 쳐서 그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어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게 하소서.(이사야 2장 4절, 참조)

주여!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하소서.(마태복음 22장 3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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