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수 취재부장

▲ 허성수 취재부장

[평택시민신문 허성수 기자] 초등학교 시절 선거 때만 되면 즐거웠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이 활기를 되찾곤 했기 때문이다. 특히 5일장이 열리는 날에는 각 정당 후보자나 지지자들이 달려와서 서로 비판하며 유세하는 모습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우리의 발길을 오랫동안 붙잡았다. 그때도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았다.

그러나 내가 중학교 시절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국민들이 직접선거를 통해 뽑던 대통령을 극소수의 선거인단이 장충체육관에서 선거하는 제도로 헌법을 개헌한 것이다. 1972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이른바 ‘유신헌법’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기구가 만들어졌고, 거기서 대통령을 선출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은 전국의 읍·면·동 단위로 선거구를 정해 대선에 앞서 선출했는데, 1972년 12월 5일 초대 대의원 2359명을 뽑았다. 이들은 같은 달 23일 장충체육관에 모여 박정희 대통령을 선출했다. 전체 대의원 2359명이 참석해 그 중 2357명이 박정희 후보를 찍었다. 입후보자는 단 한 사람뿐이었으니 대안이 없었다. 2표가 무효표로 확인됐지만 그래도 99.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나는 선거권도 없는 어린마음에 너무 싱거운 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동네어귀마다 선거벽보가 붙여져 여러 정당들끼리 경쟁하는 형식의 선거가 그리웠다. 그러나 정부는 이것이 한국적인 민주주의라며 언론을 통해 홍보에 열을 올렸고, 학교 선생님들조차도 그렇게 가르쳤다.

유신헌법에 따른 대통령의 임기는 2년 더 길어진 6년이었다. 점차 박 대통령의 장기집권이 지겨워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후에도 박정희, 교과서를 넘겨도 박정희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컬러사진과 ‘국민교육헌장’이 교과서의 표지를 넘기면 바로 나타나는 자리에 2~3페이지씩 실리곤 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문장이 지금도 뚜렷이 기억난다. 민족중흥이 뭔지도 몰랐지만 초교생 시절 우리는 선생님한테 매를 맞아가며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 나는 박 대통령 외에는 국가 지도자가 될 만한 인물이 없는 줄 알았다. 유신헌법으로 개헌하기 전 그 많던 야당 도전자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내가 초등학교 시절 대통령선거 때마다 봤던 김대중이나 양일동 같은 야당 지도자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리더십을 인정하고 양보하며 나서지 않기로 작정한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접하는 미국의 대통령선거 소식은 언제나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사이 미국은 여러 사람이 백악관을 거쳐 갔다. 초교시절 처음 들었던 존슨부터 닉슨, 포드, 카터로 이어지고 있었고, 정당도 공화당과 민주당이 교대로 집권하는 모습이 생경하면서 부럽기까지 했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나라도 새로운 지도자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1978년 유신헌법에 의해 6년의 첫 임기를 다 채운 박정희 대통령은 또 다시 ‘체육관선거’로 혼자 나가 거의 100% 가까운 대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당선됐다. 당시 박 대통령은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과 몹시 불편한 관계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국내의 정치적 상황도 결코 평온하지 않다는 것을 자주 듣게 됐다. 비로소 나의 눈과 귀가 언론이 조심스럽게 보도하는 시국 뉴스에 조금씩 열려지고 있었다. 대학가에서는 연일 데모가 벌어졌고, 수많은 학생들이 투옥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났다. 야당 국회의원들도 유신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미국언론과 유신정권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했다가 공화당과 유신정우회(줄여서 ‘유정회’라고 부르는데 국회의원의 3분의1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의 선거로 당선된다) 의원들만 등원한 가운데 국회에서 제명당했다.

그제서야 나는 박정희 정권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 동안 언론은 무소불위의 권력자 밑에서 나팔수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사실 보도가 불가능한 데다 비판하는 기능도 잃어버려 박정희 대통령이 대안이 없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지도자이자 우상으로 국민을 세뇌시키는 도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는 4월 7일은 신문의 날이다. 언론의 자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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