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과 신뢰로 버티는 1985년 대한민국 1회 공인중개사

30년 경력의 베테랑 중개인

경기 침체 너무 길어

신평택역이 들어설 예정인 지제역 인근 지역은 KTX뿐만 아니라 고덕신도시 1단계 착공이 이뤄지며 가까운 장래 평택의 중심지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그런 지제역 바로 옆에는 1985년 제1회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자 원제홍 소장이 운영하는 신평택공인중개사가 자리 잡고 있다.

공인중개사 경력만 근 30년에 달하는 베테랑 중개인인 원 소장은 학창시절 그리 공부를 많이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기 위해 송탄에서 서울로 간 그는 이일 저일 가리지 않고 돈이 된다는 일이면 무엇이든 다 했었다.

이십대 중반쯤 다시 송탄으로 내려와 과일 도매업을 배우던 그는 공인중개사 시험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31세라는 늦은 나이에 배우던 일을 모두 그만두고 서울 종로의 대명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공인중개사 시험이라는 게 처음 생긴 거라 당시엔 학원이 종로에 2~3개밖에 없었어. 뭐 어쩔 수 있나 서울까지 다니려면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했지”

대한민국에서 처음 열리는 시험이기에 어떠한 정보도 없었다. 다만 총 5~6000명을 성적순으로 뽑는다는 소문만 학원가에 무성할 뿐이었다.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보면 100점 만점에 90점 밑으로 떨어지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 그래서 나도 죽자사자 공부했었어. 숫자까지 모조리 다 외울 정도였는데 말이야”

늦은 나이에 시작하기에 더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원 소장은 갑자기 허탈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합격자 발표날 보니 전국에서 6만 명 정도를 선발한 거야. 나 참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어이가 없어서 허허허”

우여곡절 끝에 1회 공인중개사가 된 그는 1986년 1월 당시 한창 토지구획정리사업이 활발했던 수원에 첫 사무실을 열었다. 그리고 수원에서 일하던 시절 원 소장은 우연히 수원~천안 지하철 노선 계획도를 손에 넣는 기연(?)을 얻게 된다.

“아는 형님이 철도청에서 근무했었는데 넌지시 도면을 건네주더라고. 그래서 그 도면을 보고 지금의 고덕면 여염리와 지제동 쪽에 직접 내려와 보기도 했어”

철도가 들어설 지역에 땅을 미리 사놨더라면 큰 부자가 될 법도 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부동산 일을 하면서 나쁜 근성이 있어야 쉽게 돈을 번다고 하지만, 부동산 일을 업으로 삼고 사는 사람에게는 정직하고 신뢰 있는 계약과 안전거래가 생명과도 같다는 것이 원 소장의 철칙이었다.

이후 평택으로 내려온 그는 세교동과 합정동 그리고 평택역 앞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며 많은 노하우와 인맥을 쌓았고, 그 결과 평택시공인중개사 친목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었다.

1회 공인중개사로 오랜 기간 부동산에 종사해 온 그지만, 최근 몇 년은 무척 어렵고 힘든 시기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부동산 경기는 주기적으로 호조와 저조를 반복하지만, 이번에는 부동산 경기 침체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7년 넘게 이어지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공인중개사 일이 무척 어려워졌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매년 공인중개사 시험을 통해 젊고 똑똑한 친구들이 많이 배출되니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더라고”

부동산 시장의 경쟁체제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지금도 매일 아침 인터넷을 통해 지자체와 기관에서 발행하는 부동산 관련 고시·공고를 빠짐없이 기록하고,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는 원 소장은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강조한다.

“30년 가까이 공인중개사를 하고 있지만, 늘 새롭고 배워야 할 것들은 산적해 있어.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하려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공부해야 하지 않겠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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