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in 평택人, 팽택볼링 ‘그 자체’ 오용진 감독

황선옥·박미란·조영선·김승민…
대표선수 길러 ‘못다한 꿈’ 이뤄
한때 미 프로볼링 선수로도 활약
부상으로 선수생활 접고 지도자 인생

전국체전 우승, 아시안게임 4관왕, 아시아선수권대회 3관왕 획득 등으로 지난해 최고의 해를 보낸 평택시청 볼링팀 황선옥 선수. 그녀가 주요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할 때 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 기쁨을 나누는 사람은 평택시청 볼링팀 오용진 감독이다. 심지어 충북도청에 몸을 담고 있을 때 점수가 잘 나오지 않자 그녀는 소속팀 감독보다 오 감독에게 자세 교정을 요청할 정도였다.

오늘날 세계 볼링계의 여제로 등극한 그녀를 있게 한 것도 오 감독의 영향이 가장 컸다는 것이 볼링계의 평가다. 황선옥 외에도 송탄고 출신의 박미란을 비롯, 남자에서는 조영선과 김승민, 조남이, 박건용, 박근우 등 송탄고 출신들이 그의 손을 거쳐 국가대표와 청소년 대표로 활동 중이다.

또 1990년 대 중반 이후에는 사무국장과 전무이사로 상근하면서 동호인 수가 6000여 명에 이르는 오늘날의 평택시볼링연합회가 있게 한 산 증인이기도 하다.

평택 볼링의 역사에서 오 감독을 빼고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거의 없다. 또 볼링이 아니고서는 오 감독을 설명하기도 어렵다. 볼링은 지금까지의 오 감독에게 삶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볼링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6년. 스무살 때 서울 종로 낙원볼링장에서 처음 볼링공을 잡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볼링의 매력에 심취한 그는 당시 국가대표 선수인 유청회에게 지도를 받아 6년간 평택시 대표선수로 활동했다. 열정은 시간이 갈수록 그를 볼링에 몰입하게 했다. 1994년에는 볼링 종주국인 미국으로 건너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프로선수 자격을 취득해 미 프로볼링에 입문하기도 했다. 1997년에는 국내에 프로볼링이 탄생하자 한국프로볼링선수 자격도 취득했다. 최고의 볼러를 꿈꾸며 달려 온 10여 년간,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1998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손목 인대를 다치면서 그의 선수 생활도 접어야 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1994년 안중에 있는 강산볼링센터, 1995년 안중중학교,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태광고등학교 코치로 지도자 활동도 병행하던 그였지만, 이후에는 태광중, 효명중 상근 볼링코치로 본격적인 전문 지도자로 전환했다. 2001년 당시 황선옥은 태광중, 현 남자 국가대표인 조영선은 효명중 선수로 오 감독과 만났다.

그의 이름이, 그가 지도하는 선수가 국내에 이름을 알린 것은, 2001년부터 송탄고 볼링코치를 역임하면서 부터다. 중학생 시절부터 오 감독의 지도를 받은 황선옥은 고2 때인 2004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해 당당하게 태극마크를 다는 기염을 토했다. 뒤이어 모두 7명의 송탄고 출신 선수들이 잇따라 국가대표·청소년대표로 뽑히면서 ‘오용진’의 이름값도 뛰었다. 2009년에는 평택시청 감독으로 부임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

정상에 오른 모든 사람에게는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이유가 있다. 요즘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오 감독. 그는 어떻게 최고의 선수들을 키워냈을까.

“저는 최고가 되고 싶었지만 부상으로 꿈을 못 이루었죠. 대신 제자들이라도 제 꿈을 이뤄주길 간절히 원했습니다. 제자들이 정상에 설 수 있는 일이라면 저의 모든 것을 다 던졌습니다. 그것을 제자들이 잘 이해하고 잘 따라주었고.”

황선옥은 어땠을까. “선옥이도 중학교 시절에는 그만 그만한 선수였습니다. 처음엔 목표 의식이 부족했는데, 국가대표 선배를 보면서 본보기로 삶도록 하고, 뇌호흡과 명상으로 자신을 다스리도록 했습니다. 선옥이 뿐만 아니라 선수들과 오랫동안 동고동락 해왔기 때문에 그 선수에게 맞는 저 나름대로의 처방이 있죠. 선옥이는 제 처방전이 잘 듣는 편이라...좋은 제자를 만난 제가 복이 많은 거죠.”

오 감독은 1년 365일 중 절반 이상을 선수와 함께 숙식한다. “대회마다 개인전, 2·3·5인조 단체전, 개인종합, 마스터스 등 6개 종목이 있는데, 하루에 한 종목씩이 열린다. 레인 파악 등 사전 준비까지 보통 10여일이 넘는 대회기간 동안 대회장을 떠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을 어떻게 평가할까. “지난해는 실업팀 코치 2년차였습니다. 주변에서는 ‘중·고생 대회에서는 성적이 좋았는데, 과연 실업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나 보자’라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고, 저 스스로도 성적이 나와 주어야 할 시점이라는 압박감이 느껴질 때 메달이 터져 주었습니다. 어깨에 멘 부담감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던 시간이 됐습니다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올해 시즌에 임하려 합니다.”

그가 말하는 ‘남은 가야할 길’은 최고로 성장하는 제자들이 성공한 지도자로 안착하는 일이다. “저는 제자들을 제 성공의 도구로, 생활의 방편으로 삼는 것을 경계합니다. 제자들이 지도자로 또 그 후진을 양성하는 성공한 지도자가 되도록 앞서 가는 선배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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