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성진 편집주간

1. 기상-‘날씨’라는 쉬운 우리말이 있다. 영어로는 weather로 번역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의 상태를 말한다. 몇 시간에서 며칠 또는 몇 달까지로 짧은 기간 동안의 대기 상태를 일컫는다. 기상청에서 조사하는 대기 상태의 종류는 생각보다 많다. 추운가 더운가, 습한가 건조한가, 바람은 얼마나 센가, 기압은 얼마나 되나, 구름은 얼마나 끼고 비나 눈이 오면 그 양은 어떤가, 공기 중의 먼지(특히 황사) 양은 얼마나 되나 등이 기상과 관련해 조사해 발표하는 수치들이다.
영어 climate로 번역하는 기후는 기상 상태를 긴 시간에 걸쳐 모아놓은 것을 말한다. 긴 시간이란 1년 단위가 아니라 최소한 10년이며, 세계기상기구에서는 30년의 지역별 평균 날씨를 말한다. 


오늘 또는 내일의 대기 상태를 말할 때 기후란 말을 쓰지 않는다. 2000년 전 삼국시대 때의 대기 상태를 설명하면서 기상 또는 날씨란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이례적으로 눈이 많이 온 3월에 대해 말할 땐 기후이변이라 하지 않고 기상이변이라 한다. 지구 대기 온도가 꾸준히 올라가는 현상을 설명하는 ‘온난화’는 기후에 대한 이야기지 기상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기상과 기후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은 다양한데 대기의 상태와 흐름이 기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데 비해, 기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태양활동의 변화, 대륙의 이동, 화산폭발에 의한 공기 중의 먼지, 환경오염과 온실가스, 숲의 파괴 등이다.


기상과 기후를 대하는 사람들이 태도도 다르다. 기상에 대해 말할 땐 굳이 과학지식을 들먹이지 않는다. 내일 춥대? 비가 많이 온다며? 식으로 정보를 나눈다. 얇은 옷을 입어도 되는지, 우산을 준비할지, 차를 닦을지, 야외활동을 할지 판단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한다.
기후에 대해 말할 땐 좀 아는 체를 해야 한다. 요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를 얘기하자면 나와 관계없는 다른 나라의 기상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세계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식이 필요하다. 내일의 날씨를 걱정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지구촌 주민으로서의 의무를 지킬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2. 기상 정보와 기후에 대한 지식을 구분하고 대응하는 것은 인류가 자연현상을 꾸준히 관찰하면서 변화의 주기를 파악하는 지혜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환경을 관찰할 때도 기상과 기후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난 겨울이 작년이나 재작년보다 더 추웠고 눈이 많이 왔다고 해서 지구온난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부자 나라는 더 부하게 되고 가난한 나라는 더 가난하게 만드는, 나라 안에서도 부자들의 삶은 더 좋아지고 가난한 이들의 삶은 더 척박해지는 현상은 이번 겨울처럼 유난히 추웠던 기상 이변으로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당분간은 돌이킬 수 없이 지속될 대세인 기후 변화로 읽어야 할까요? 수출이 늘어나고 외환 잔고가 쌓이는데도 중년은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청년들은 취업하기 어려운 경제현상은 잠시 두꺼운 옷 입고 버티면 되는 일시적인 ‘기상 변화’적 일인가요? 아니면 우리 자식들도 몇 십 년 뒤 우리처럼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손자 세대가 사회에 진출할 때 지금 보다 더 취업하기 어려워지는 ‘기후 변화’적 일인가요?           


온 나라를 휩쓸고 있는 영어 광풍은 찻잔 속의 태풍인가요, 아니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가요? 걱정을 하는 입장이든,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든, 출산율의 저하는 일시적 현상인가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유지될 현상인가요?
사람의 머릿속에 든 것이 얼마나 되고 가능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부모의 재산과 외모가 배우자 선택의 기준이 되는 이 기가 막힌 현상은 원래 사람이 그런 때문인가요, 방송이 조작해낸 한 때의 유행인가요?
강을 파헤치는 국가적 사업을 둘러싼 논쟁과 이 사업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의 마음은 수십 년 전 고속도로를 닦을 때 겪었던 논란과 희생처럼 잊히고 말 것인가요, 아니면 흐르던 물길을 그대로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될 것인가요?


지난 2년 새 얼어붙은 남북관계는 지금이 정상인가요, 아니면 저 지난 10년 동안의 훈훈한 관계가 큰 흐름인가요? 대선이든,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한 번 치를 때마다 지역과 계층을 갈가리 찢어 놓는 안타까움은 아직 민주주의 실험이 몇 십 년밖에 안된 나라가 치를 수밖에 없는 수업료인가요, 국가적인 축제에 우리 후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진화의 씨를 품고 있는 것인가요?

 

3. 개인적으로는 지금 사는 게 힘들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찾을 수 없지만 그래도 몇 년 후에는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자식들과 손자들은 더 활기찬 세상에서 살 수 있겠지 하며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희망을 이야기면서도, 오늘 내일의 ‘기상’과 30년 흐름의 ‘기후’를 구분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희망을 구체화하고 희망을 위해 행동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상은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것이지만 기후는 우리가 오늘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지구온난화의 흐름을 조금은 늦출 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23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기상의 날’입니다. 1950년에 제정됐으니 60돌을 맞습니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기상청에선 이날 오후 4시30분부터 ‘파란하늘 & 환경사랑 음악회’가 열리고 경기도 과천에 있는 국립과학관에서는 기상과 관련한 역사자료 전시회가 28일까지 있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갈 시간이 없는 분들은 20일(토) 저녁 7시에 KBS 다큐멘터리 과학카페 ‘하늘을 읽는 기술-기상과학의 비밀’을 같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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