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성진 편집주간

1. 2009년 1월20일 용산. ‘세입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며 서울 용산구 남일당 옥상 철탑망루에서 농성 중이던 철거민들에 대한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이 치러졌다. 이 과정에서 5명의 철거민들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사건직후 숱한 문화예술인, 종교인, 촛불시민들이 유가족과 함께했지만 정권은 침묵과 탄압으로만 일관해왔다. 


해를 넘기기 직전 유가족과 용산재개발조합, 서울시와 정부는 1년 가까이 순천향대학병원 영안실 냉동고에 보관되어있던 철거민들의 장례를 치루고, 보상금을 지급하며, 국무총리가 유감을 표명하는 것을 골자로 합의를 하였다.
무서운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월9일. 무려 355일 만에 고인들의 어깨에 지워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드리는 날이다. 합의이후 지난 유가족과 범국민대책위는 장례를 준비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추모위원을 모집했다. 전국에서 8천명의 추모위원이 참여했다.

 

2. 이날 ‘용산참사 철거민 민중열사 범국민장’에서 만난 얼굴들엔 참으로 많은 표정들이 얽혀 있었습니다. 참사의 진상도 밝혀지지 않았고 참사를 부른 재개발 자체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되지 못한 상황에서 치르는 영결식에 모두의 마음이 무거웠던 모양입니다. 서울역 앞 광장에서 열린 장례식이 끝나고 참사의 현장인 용산 남일동으로 이동하는 동안엔 눈이 쏟아지고 날씨마저 흐려 행진하는 모든 이의 발걸음을 더디게 했습니다.  


그날 현장에서 만난 얼굴들 가운데는, 이 자리만 아니었다면 환하게 웃으면서 악수도 하고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나눌 이도 적지 않았지만, 그날의 만남은 그냥 어색하고 서로 미안해하면서 겨우 “다음에 연락할게”라며 헤어지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2008년 촛불 광장에서 만났더라면 처음 보면서도 반갑게 웃음을 나누고 격려하고 서로 고마워하면 손잡았을 그런 얼굴들도 있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 함께 했던 평택의 얼굴들을 기억합니다. 평택 시민단체 회원과 시민 40여 명은 이날 아침 일찍 서울역으로 가서 장례식과 용산 남일당 앞의 노제 자리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어떤 이는 작년 참사 발생 이후 여러 차례 현장을 찾아 유가족을 위로하고 무언가 도울 일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다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조직’의 일원으로 참석하고 어떤 이는 뒤늦게나마 장례 자리에 머리수라도 채워주어야겠다고 아침 일찍 평택역으로 나가 합류했다고 합니다.
평택의 신부님들이 현장에서 10개월 가까이 진행된 미사에 참석해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고 현장을 지키는 문화예술인들을 격려했다는 얘기도 뒤늦게 들었습니다.


참사 이튿날 현장으로 달려가 그림 그리고 추모 콘서트를 열고 사진을 찍으면서 ‘현장 활동’을 벌인 문화예술인들에게 우리 사회는 큰 빚을 졌습니다. 이들이 현장을 지켜준 덕에 3월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종교계가 합류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1월20일 현장으로 달려간 젊은 문화예술인 가운데 <평택시민신문>의 시민기자 한 분이 있었다는 점을 벅찬 마음으로 전합니다.
수백 장의 만장과 참여단체의 깃발이 행진하는 동안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의 깃발을 들고 가는 해고 노동자의 얼굴도 눈에 선합니다. 

 

3. ‘8천명이 넘는 추모위원이 있었는데 서울역 광장에 모인 4천명(경찰추산 2천5백명)의 인파를 희망으로 보아야 할지, 절망으로 보아야 할지 나중에 토론하기로 했습니다.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