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미군기지 확장예정지역인 팽성읍 대추리와 도두리 지역 빈집을 이번 주 안으로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수요일인 13일 새벽이나 늦어도 14일에는 이루어 질 전망이다. 주민들이 이주하고 남아 있는 130가구 중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 90여 가구에 대한 철거를 실시한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2008년 말까지 미군기지를 이전시키기 위해서는 내년 초부터 부지조성공사를 해야 하므로 빈집철거 및 주민강제 이주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번의 빈집철거에 이어 남아있는 주민들에 대해서도 끝까지 이주를 거부할 경우 가을까지는 강제 이주시킨다는 방침이다.

지난 5월 4일 대추분교에 대한 강제집행 이후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는 경찰의 삼엄한 경계 때문에 외부인이 출입하지 못하는 고립된 지역이 되었다. 주민들이 농사를 짓겠다고 한 땅에는 철조망이 쳐져 영농행위도 일체 금지되고 있고, 주민 투쟁의 상징적 인물인 팽성대책위원회 김지태 위원장(대추리 이장)은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현재 대추리와 도두리에는 마지막까지 이주를 거부하는 60여 가구의 주민과 대추리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평택지킴이’ 회원 등이 남아 매일 밤 촛불집회를 열며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강제철거 방침이 발표되자 범대위와 주민들은 성명을 통해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는 ‘국가폭력’에 맞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난 5월 4일 같은 대규모 충돌과 불상사도 예견되는 상황이다.

우리는 과연 이 시점에서 정부가 빈집철거를 서두를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합법적인 공권력집행이라고 해도, 철거과정에서 불상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주민과 시민사회단체의 격렬한 반발을 초래해 끝까지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어 비극적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국민의 따가운 시선도 큰 변수로 남는다.

이러한 문제점 이외에도 특히 최근의 몇 가지 중요한 사태 변화는 정부 계획을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정부가 엄청난 후유증이 남는 빈집철거와 주민강제 이주를 서두르지 말고 끝까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선, 애초 합의한 대로 2008년까지 미군기지 평택이전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지난 8월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미군기지 평택이전은 예정보다 2년 내지 3년 정도 늦어질 전망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 스스로 미군기지 평택이전이 한미간의 합의시한인 2008년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노대통령의 이 발언은 국정 최고 책임자의 언급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며, 이 발언이 최근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문제와 연관해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재편, 즉 평택이전이 완료되는 2009년 까지 전작권을 넘겨주겠다고 밝히고 이에 대해 보수진영의 반발이 거세게 일자 노대통령은 평택이전 사업은 2년 정도 늦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한국정부는 이를 고려해 2012년까지 환수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번 빈집철거는 2008년말 까지 이전한다는 당초의 계획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쉽게 말해 정부는 20008년까지 기지이전사업이 마무리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힘없는 주민들을 우선 내쫓아 토지수용을 완료해 장애물을 우선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국민적 동의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평택기지의 청사진인 시설종합계획(마스터플랜·MP) 확정작업이 계속 지연되고, 당분간 보류될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일 조선일보는 1면 톱기사에서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에 반환키로 함에 따라 미군기지 평택이전 시설종합계획의 전면 재수정이 불가피 해 당분간 마스터플랜 논의를 중단키로 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현재의 마스터플랜은 한·미연합사령부 체제가 상당기간 존속하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한·미연합사령부의 지휘체제가 해체되므로 시설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국방부는 서둘러 이 보도를 부인했지만, 원래 금년 초로 예정되어 있던 마스터플랜 확정 일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고, 최근의 전시작통권 반환문제와 연계돼 마스터플랜 확정 일정은 늦추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마스터플랜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민을 강제로 쫓아 내는 작업이 과연 국민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최근 주목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31일 참여연대와 환경운동연합, YMCA 등 한국시민사회단체 핵심인물 77인이 대추리 빈집강제 철거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하면서 기지이전 부지를 축소해 농지와 택지를 보전해 주민생활터전을 보장하는 방안을 정부와 범대위 등에 중재안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도 기지이전 부지를 절반으로 축소할 것을 계속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나 이전비용 한국 측 부담 등 시민사회진영에서 제기하는 기지이전반대 논리와 주민 생존권 주장을 분리해서 해결하자는 주장으로 현실적으로 검토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전시작전권 환수와 상당수 미군병력의 철수 등으로 과연 285만평의 시설부지가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제기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범대위 등이 한발씩 양보한다면 현재의 갈등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용산기지 이전협정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9월말 개최키로 합의됐다는 소식이다. 청문회를 통해 제한적이기는 하겠지만, 기지이전협정의 문제점이나 비용부담문제, 주민생존권 문제 등이 종합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합리적 해결방안이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엄청난 반발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그다지 절박하게 필요하지도 않은 빈집강제 철거를 왜 서두르는가 하는 점이다. 강제철거는 극단적 감정만 부추길 뿐이고,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대추리 주민의 고통?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서 발생하는 비극적 고통이다. 국가와 시민사회단체, 온 국민이 대추리 문제의 평화적 해법 찾기에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 아직도 시간은 충분히 남아 있다. 빈집을 강제로 철거해도 사태가 마무리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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