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곡 '서해대교' 별명도 '평택항 홍보국장'

단아한 체구와 수수한 인상,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생활 속에서 오로지 노래만을 고집하며 살아온 인생. 서교원(41세). 그가 평택항과 서해대교를 주제로 노래를 작사하고 불러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평택항 홍보를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

지난 제1회 MBC 향토가요제에서 '평택항 서해대교'란 노래로 당당히 금상을 수상하게 되기 전까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전국적인 매스컴을 통해 평택항이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 점점이 라디오의 전파를 타고 그의 이름이 알려지고 함께 평택항이 홍보되고 있다.

"의외로 사람들이 평택항이 개항되어 운영되고 있음에도 평택에 항이 있다는 것을 외부에서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고 밝히는 그는 그의 무명생활을 극복하려는 의지도 보였지만 자신의 노래를 통해 전국적으로 평택항을 알리는 계기가 되는 것을 무척 영광스러워 하고 내고향을 위해 ands가를 한다는 점에서 자긍심을 갖는다.. 그리고 현덕면 신왕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때까지 살았던 고향에 대해 평택이 신항구도시로 발전할 수 있다면 애향민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한다는 소신을 겸비하고 있다. 이런 그를 방송국을 비롯한 평택외부에서는 평택항 홍보국장이라고 부른다.

초등학교 6학년 사은회때. 이미자씨의 '두견새 우는 소리'가 13세 꼬마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주위에서는 경탄의 소리와 함께 가수가 나왔다는 기분좋은 소리에 소년은 그때부터 가수의 꿈을 갖기 시작했고 고등학교때까지 어렵게 어렵게 노래공부를 해왔다.

성년이 된 후 먹고 사는 것을 해결해야 했던 서씨는 경제적인 난관에 부딪혀 잠시 가수의 꿈을 접고 일선 현장에서 생활을 위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 도저히 가수로서의 꿈을 버릴 수 가 없었던 그는 생업과 가수로서의 길을 함께 걷는다. 실적을 많이 올린 보험회사 소장자리도 자신의 꿈을 위해 접고 20여년동안 무명이지만 가수의 길을 걸었다. 무명의 설움을 말로 다할까?

1979년 작곡가 주성민을 만나 첫 앨범 '추억의 삽교호'를 내놓고 옴니버스 앨범에서 '당신은 몰라요', '안개 속의 그여인'을 불렀다. 또한 유정 작사, 송결 작곡의 '말좀해봐요'가 애청자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다운타운 인기차트에 오른다.

이번이 세 번째 앨범. 앨범을 낼 때마다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수중에 남은 것은 별로 없다. 그래도 그는 교도소나 노인정 위문공연, 심장병 어린이 성금모금 자선공연, 경로자치에서 부르기만 하면 그대로 달려간다. 특히 나이 많이 드신 어른들을 위해 자신의 노래를 부를 때가 가장 마음이 편하단다. 자신의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국적으로 평택항을 알리기 위해서는 노래 테이프나 CD판매로는 턱없이 부족. TV방송을 비롯한 7개 방송의 전파를 활용하고 많은 방송 출연도 절대적인데 활동자금이 없어 발이 묶인 상태다. 친구이자 매니저인 배창수씨는 "이제 본격적으로 중앙무대에 진출하여 평택항을 알려야 합니다. 후원회가 구성되어 평택항을 알리는 서교원가수의 활동에 불씨를 붙였는데 이 불씨가 활활 잘 탈 수 있도록 지원계획이 수립되어 평택항을 제대로 홍보하고 서가수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면서 후견인이나 후원회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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