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24년 10월 출생해 평택성동초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상대를 졸업했으며, 건국 직후인 1948년 해공 신익희 선생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해 1963년 평택지역에서 6대 국회의원에 첫 당선되어, 9, 10, 11, 12대에 걸쳐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1967년 신민당 조직국장과 사무차장을 거쳐, 1974년에 신민당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이후 1980년에는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해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야당인사들이 연금 또는 투옥으로 정치활동 규제를 당할 때 민한당 창당을 주도해 민한당 총재로 선출됐다. 고인은 1981년 제5공화국이 출범할 때에 유일 야당인 민한당 총재로서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고인은 1985년 12대 국회의원에 출마해 의정활동을 펼친 후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매년 정월보름에 평택에 내려와 지역에 있는 후보들과 교감을 가졌으며, 저서로는 <역사의 기로에서>, <민주화의 과제> 등 다수가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 일호(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씨, 딸 현숙, 현방 씨가 있다. 발인은 5일 오전에 진행되었고, 평택 비전동에 있는 고인의 생가터에서 노제를 지냈다.
이날 김영광 전 국회의원은 조사(弔辭)를 통해 “고 유치송 선생은 민주조국의 건설과 발전을 위해 정치일선에서 온 몸을 바치셨던 평택이 낳은 큰 인물이었다”면서 “이제 평택소사벌이 낳은 큰 별이 떨어져 우리의 마음이 더없이 아프고 한스러워 견딜 수가 없다”고 애달파했다.
양용동 기자
ydong33@pt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