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주민 아픔 어루만지고 진지한 대화에 나서라

미군기지 평택이전 문제가 마침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하던 국방부가 지난 4일 전격적으로 대추분교에 대한 행정대집행을 단행하고 주민들의 영농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29km에 달하는 철조망을 확장예정부지 주변에 설치했다.

그간 대추리 주민들과 범국민대책위 등의 각종 시위와 집회의 상징적 구심이 되었던 대추분교는 포크레인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경찰 뿐 아니라 공병부대와 이들을 경호하기 위한 특공부대 등 군인까지 투입된 이번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나 600여명의 시위대가 연행되고 16명이 구속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5일에는 행정대집행에 항의해 전국에서 모인 시위대가 철조망을 경계하던 군인과 충돌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연일 텔레비전과 중앙 언론을 장식하는 평택미군기지 사태는 이제 평택차원의 문제를 넘어 전국적 이슈가 되어 버렸다.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랐던 평택시민들은 행정대집행 과정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며 착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민들 사이에는 정부가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었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기지 확장문제는 한미간의 합의사항이고 국회비준까지 마친 국책사업으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으며 그간 주민들과 150여차례나 대화를 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해 불가피하게 공권력을 투입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특히, 3년을 넘게 끌어 온 이 문제로 인해 평택시민들 사이에서는 어찌되었든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피로감이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범대위 등 ‘반미 과격단체’들이 주민들을 선동해 투쟁이 당초 ‘보상차원의 문제’에서 ‘반미운동’으로 변질되었다는 정부당국이나 일부 정치권의 주장에 동의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사태가 빨리 끝나기를 바라며 공권력, 나아가 군대의 투입까지도 수긍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번 공권력 투입으로 사태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오히려 공권력 투입은 주민의 극한적 반감을 부추기고 있다. 아직 정부는 토지수용을 반대하는 100여 가구의 대추리 주민을 대추리에서 ‘쫓아내지’ 못하고 있다.

6월말까지 강제퇴거 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공권력 투입으로 주민들은 ‘이곳에서 모두 죽겠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다. 또한 공권력 투입 직후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 참여연대 등 전국의 모든 시민단체 뿐 아니라 천주교 등 종교계까지 망라된 전국민적 ‘비상시국회의’가 결성됐다.

14일에는 전국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대추리에서 군 병력 철수와 군사보호구역지정 해제 등을 요구하며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정부와 시민사회단체가 정면충돌하는 일촉즉발의 국면으로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다. 국방부장관은 대추리에 투입된 군인에게 곤봉 등 개인보호용 장비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자칫 일부의 우려대로 군과 민간인이 정면충돌하는 80년 ‘광주사태’같은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국면이다.  

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악화되었는가. 이제 합리적 해결의 길은 없고 오직 극한적 대립과 파국만이 유일한 해결책인가. 평택시민은 대추리 주민과 범대위 등 시민사회단체가 한 축이 되고, 군인과 경찰이 한 축이 되는 격렬한 충돌이 평택에서 벌어지는 것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만보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해야만 하나.

우리는 국방부의 군 병력 투입이 성급했다고 판단하며, 지금이라도 파국을 막고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다시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땅을 내줄 수 없다’는 주민들의 주장을 ‘보상을 더 받기 위한’ 투쟁으로 왜곡하거나 외부 불순세력의 개입으로 사태해결이 안 된다는 여론 호도 행위를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

보상을 더 받기 위해 70먹은 노인들이 600일이 넘게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는가. 그간 수차례 밝혔듯이 주민의 요구는 단순히 보상을 더 받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두차례 외국군인을 위해 삶의 터전에서 쫓겨났던 주민들의 더 이상 미군에게 땅을 내 줄 수 없다는 ‘생존권적 요구’라고 우리는 판단한다.

정부가 주민들의 이러한 절박한 요구를 그동안 보상을 더 받기 위한 것으로 치부하며 주민을 무시하고 사태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 결국 지금과 같은 파국을 초래한 일차적 원인이라고 판단한다. 범대위 등 평화운동 세력의 대추리 주민과의 결합 역시 1차적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

미군기지 이전은 평택의 문제임과 동시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문제가 결합되어 있어 애초부터 전국적 사안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범대위가 결성되기 전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정부는 주민과 진지하게 대화하지 않고 주민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지 못하고 강경일변도로 몰아붙였다. 그 결과 범대위 등이 주민과 결합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평택문제’로 국한될 수도 있는 사태를 ‘전국적 사안’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제 와서 외부세력의 사주 내지 의식화 운운하는 것은 정부, 특히 국방부의 초기대응 잘못을 호도하고 사태의 책임을 주민과 평화운동세력에게 전가하는 행위이다.

국방부는 대화에 나선지 이틀만에 전격적으로 공권력을 투입했다. 이는 진지한 대화의 의도가 처음부터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이 기지이전 마스터플랜(MP) 제출시한을 6월에서 9월로 넘긴 상황에서 과연 하루 이틀이 중요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대화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랐던 대다수 평택시민의 염원을 저버린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평택시민은 미군기지 이전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주민의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평택주민이 어떠한 이유이든 군인과 경찰에 의해 짓밟히는 사태를 원치 않는다.

정부는 더 큰 파국을 막기 위해 이제라도 진지한 대화에 나서야 한다. 6월말 이후 주민들을 강제로 퇴거 시키는 과정에 어떠한 불상사가 날지 모른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한미간의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태로 상황이 더 악화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지역 정치권에도 당부한다. 평택출신 정장선 국회의원은 한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해 주민이 외부세력에 의해 의식화돼 문제해결이 안되고 있다며, 범대위 등 외부세력은 평택을 떠나라고 주장했다. 마치 강정구 교수는 북한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던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는 정장선 국회의원이 사태의 본질을 의도적으로 왜곡했거나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라고 본다. 또한 그러한 주장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범대위나 ‘비상시국회의’는 우리가 떠나라고 해도 떠나지 않는다.

이미 대추리 주민과 더불어 ‘평택사태’의 한 축이 되었기 때문이다. 있는 현상을 그대로 보고 이 전제 위해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같은 열린우리당 소속의 임종인 의원이 기지 확장을 지금의 면적에서 절반정도로 줄이는 협상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국무총리나 대통령에게 지금이라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해야 한다.

아울러 평택시장 선거 후보자들 역시 선거의 유불리를 떠나 단일한 목소리로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해야 한다. 지금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군인 철수와 군사보호구역 철폐를 요구하며 평택시청 앞에서 릴레이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말없는 다수의 평택시민들은 사태 흐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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